프라이 오토, 바람과 장력 사이에 머물 자리를 만들다
천막과 케이블, 나무 격자를 통해 그는 건축을 무거운 물체가 아니라 힘과 사람과 자원이 잠시 균형을 이루는 장소로 보았다.
프라이 오토(Frei Otto, 1925–2015)는 독일을(를) 대표하는 경량 구조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프라이 오토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케이블을 당기면 주름은 다른 곳으로 달아난다
발전소 정비 현장에서 대형 방수포를 펼칠 때면 네 귀퉁이를 세게 잡아당기는 것만으로는 표면이 반듯해지지 않는다. 한쪽 샤클을 조이면 가운데 주름이 사라지는 대신 반대편 가장자리가 들리고, 턴버클을 반 바퀴 풀면 팽팽하던 면이 갑자기 숨을 내쉰다. 작업자 몇 명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힘을 조금씩 조절한 뒤에야 천은 비로소 조용해진다. 프라이 오토의 지붕을 사진으로 처음 오래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그 방수포의 주름을 떠올렸다. 그의 지붕은 하늘에 얹은 판이 아니라 서로 다른 힘이 잠시 합의한 표면처럼 보였다.
이런 구조를 보면 먼저 감탄하고 싶어진다. 기둥은 가늘고, 지붕은 떠 있으며, 빛은 막히지 않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장력재를 다뤄 본 사람에게 팽팽함은 곧 불안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느 한 점의 처짐, 체결부의 미끄러짐, 예기치 않은 풍압이 전체 형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프라이 오토의 건축 앞에서 아름답다는 말보다 먼저 묻게 된다. 이 얇은 면은 어디에서 힘을 받고, 어디로 힘을 보냈을까.
프라이 오토, 완성된 윤곽 대신 힘의 합의를 기다리다
프라이 오토는 1925년 독일 지크마르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성장했다. 글라이더를 설계하고 비행했던 경험은 얇은 막과 가벼운 골조가 바람에 반응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말에는 프랑스 샤르트르 인근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며 제한된 재료로 필요한 시설을 짓는 일을 맡았다. 적은 재료로 공간을 만들어야 했던 경험을 그의 모든 작업에 대한 단일한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후 그가 반복해서 추구한 ‘최소한의 물질로 최대한의 공간을 덮는 법’과 분명 맞닿아 있다.
그는 머릿속에서 멋진 곡선을 먼저 그린 뒤 구조기술자에게 계산을 맡기는 방식과 거리를 두었다. 천, 철사망, 매달린 그물, 비눗막 같은 물리 모형에 힘을 가하고, 재료가 스스로 만드는 균형 형상을 관찰했다. 컴퓨터는 그 형상을 검증하고 수치화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출발점에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형이 있었다. 형태를 명령한 것이 아니라 조건을 만들고 기다린 셈이다.
그가 건축물에 정말 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읽은 프라이 오토의 중심에는 특정한 곡선이나 천막 모양보다 ‘낭비하지 않는 자유’가 있다. 재료를 덜 쓰되 공간을 옹색하게 만들지 않고, 하나의 저자보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모으며, 완성품보다 다른 사람이 이어 갈 수 있는 연구 방법을 남기는 태도다. 가벼움은 외관의 취향이 아니라 자원과 권한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Photo by Immanuel Giel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몬트리올의 천막과 뮌헨의 투명한 그물
1967년 몬트리올 세계박람회의 독일관은 프라이 오토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롤프 구트브로트와 건축을 함께 맡고 프리츠 레온하르트가 구조에 참여한 이 임시 전시관은, 높은 마스트 사이에 미리 인장력을 준 케이블 네트를 걸고 그 위에 반투명 막을 덮었다. 독일에서 준비한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한 지붕은 박람회가 끝난 뒤 해체되었다.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 천막의 봉우리가 건물 한 동을 표시하기보다 전시장과 통로, 사람의 흐름을 느슨하게 묶는다. 지붕은 경계선이 아니라 날씨를 걸러 내는 넓은 여과막에 가깝다.
1972년 뮌헨 올림픽공원의 지붕에서는 그 실험이 도시 규모로 커졌다. 경기장과 실내경기장, 수영장과 그 사이의 동선을 덮는 케이블 네트는 여러 개의 안장형 곡면으로 이어지며, 약 75센티미터 간격의 그물 위에 투명한 아크릴 유리판이 설치되었다. 사진을 확대해 보면 흐린 하늘이 케이블 사이에서 작은 마름모 조각으로 잘린다. 만약 그 아래를 걷는다면 지붕이 있다는 사실보다, 비를 피하면서도 하늘을 계속 볼 수 있다는 점이 먼저 몸에 닿을 것 같다.
이 지붕을 프라이 오토 한 사람의 작품으로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공모안을 이끈 귄터 베니슈와 프리츠 아우어, 프라이 오토, 프리츠 레온하르트, 외르크 슐라이히와 루돌프 베르거만을 비롯한 수많은 기술자가 함께 만들었다. 또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전후 독일의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올림픽공원의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프라이 오토의 가치는 혼자 거대한 형상을 발명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자기 이름을 구조의 모든 접합부에 새기지 않고, 여러 사람의 계산과 실험이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되도록 했다는 데 있다.
Photo by Ali from Riyadh : ) from Riyadh, Saudi Arabia / CC BY 2.0 / Wikimedia Commons만하임에서 가벼움은 늙는 법까지 드러냈다
1975년 연방정원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만하임 멀티할레는 천막 대신 나무를 휘어 만든 지붕이다. 건물과 공원의 전체 구상은 카를프리트 무츨러와 요아힘 랑너가 맡았고, 프라이 오토는 목재 격자 셸을 발전시켰으며 오베 아럽의 기술진이 구조 검토에 참여했다. 약 50센티미터 간격으로 교차한 캐나다산 헴록 각재를 바닥에서 평평한 격자로 조립한 뒤 들어 올리고, 가장자리를 고정해 이중 곡면으로 만들었다. 폭이 가장 넓은 곳은 약 60미터에 이르고, 지붕 꼭대기는 지면에서 약 20미터까지 올라간다.
나는 이 구조의 사진에서 천장보다 먼저 보행자의 어깨 높이를 본다. 나무 격자는 멀리서는 한 장의 곡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수많은 볼트와 교차점, 얇은 부재의 반복이다. 길을 걷다가 지붕이 낮아지는 부분에서는 몸이 자연스럽게 가장자리로 이끌리고, 높은 돔 아래에서는 여러 활동이 한 공간에 섞일 수 있다. 형상이 사람을 압도하기보다 머무름의 농도를 조금씩 바꾼다. 이것이 멀티할레의 실내적 장점이다.
그러나 가벼움은 공짜가 아니었다. 처음 설치한 PVC 코팅 트레비라 막은 누수 때문에 1981년에 교체되었고, 임시 시설로 계획된 목재 격자도 시간이 흐르며 접합부와 부재의 열화를 점검하고 보강해야 했다. 발전 설비에서도 얇고 효율적인 부품은 초기 재료비를 줄여 주지만, 허용 변형과 체결 상태, 부식과 피로를 더 세밀하게 관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적게 쓴다는 말은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프라이 오토의 건축이 지금까지 남긴 가장 현실적인 교훈은 어쩌면 여기에 있다. 재료를 덜 쓰려면 관찰을 더 오래 해야 한다.
자기 집과 사막의 궁전, 생각은 생활이 되었을까
프라이 오토는 1969년 로브 크리어와 함께 슈투트가르트 인근 레온베르크-바름브론에 자신의 집인 하우스 오토를 지었다. 그곳은 뒤에 그의 작업실과 연구 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작품명과 연도, 공동 설계자만으로 그 집이 가족에게 완벽한 생활공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건축가의 집이라고 해서 생각이 그대로 굳어진 자서전은 아니다. 수납이 부족했는지, 겨울에 추웠는지, 가족이 어느 자리를 좋아했는지는 도면 밖의 일이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에는 쉽게 그렇다고 답하지 않으려 한다.
1985년 리야드에 완공된 투와이크 궁전은 프라이 오토를 가벼운 천막의 건축가로만 기억하는 시선을 흔든다. 오므라니아, 아틀리에 프라이 오토, 뷰로 해폴드가 협업한 이 건물은 석회암 고원의 두꺼운 곡선 벽과 정원, 안뜰, 케이블로 지지된 천막 구조를 함께 사용한다. 바깥의 건조한 대지에는 닫힌 벽으로 대응하고, 내부의 오아시스와 전망이 필요한 곳에서는 가벼운 지붕을 내민다. 무거움과 가벼움이 싸우지 않고 서로의 일을 나누는 건축이다.
나는 아직 바름브론의 집에도, 리야드의 투와이크 궁전에도 가보지 못했다. 여행 경비를 계산하다 보면 지도 위의 점이 실제 표보다 가까운 날이 많다. 그래도 언젠가 그 앞에 선다면 외형부터 촬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벽 가까이와 천막 아래의 온도 차이를 느껴 보고, 빛이 어디에서 끊기는지, 사람이 그늘을 따라 어떤 경로로 걷는지 보고 싶다. 프라이 오토가 남긴 생각은 사진 한 장의 곡선보다 그런 작은 이동에서 더 분명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결론 — 건축물 앞에서 하중의 길을 따라가 보기
프라이 오토는 건축을 덜 무겁게 만든 사람이지만, 단순히 얇은 지붕을 잘 만든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물리 모형을 통해 힘이 스스로 균형을 찾게 했고, 건축가와 구조기술자, 생물학자와 제작자가 함께 지식을 만들도록 했다. 몬트리올의 임시 천막은 사라졌고, 뮌헨의 케이블 지붕은 점검과 보수를 거치며 남아 있으며, 만하임의 나무 격자는 가벼운 구조도 늙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투와이크 궁전에서는 가벼움이 두꺼운 벽과 공존한다. 그의 건축은 하나의 답보다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답에 가깝다.
이제 나는 건축물 앞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아름다운지부터 판단하기 전에 지붕의 하중이 어느 케이블과 기둥을 거쳐 땅으로 내려가는지, 재료를 줄인 대신 어떤 점검과 보수가 미래에 넘겨졌는지, 그 아래에 선 사람은 비와 빛과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고 싶다. 발전소의 방수포를 다시 펼치는 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 턴버클을 조금 풀고 반대쪽 모서리를 당기면 주름이 천천히 이동한다. 어느 순간 표면이 조용해진다. 프라이 오토가 평생 기다린 것도 아마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프라이 오토는 왜 경량 구조 건축가로 불리는가?
프라이 오토는 케이블 네트, 인장막, 공기막, 목재 격자 셸처럼 적은 재료로 넓은 공간을 덮는 구조를 연구했다. 완성된 외형을 먼저 정하기보다 물리 모형을 이용해 힘이 균형을 이루는 형상을 찾았다는 점도 경량 구조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 지붕은 프라이 오토의 단독 설계인가?
단독 설계가 아니다. 귄터 베니슈와 프리츠 아우어가 이끈 베니슈 운트 파트너, 프라이 오토, 프리츠 레온하르트와 여러 구조기술자가 공동으로 설계와 실험, 계산을 수행했다.
프라이 오토는 비눗방울을 건축 설계에 어떻게 이용했는가?
그는 비눗막이 주어진 경계 안에서 표면적을 최소화하며 균형을 이루는 성질을 관찰했다. 비눗막과 천, 매달린 그물 모형에서 얻은 형상을 측정하고 구조 계산으로 검증해 인장막과 케이블 네트 설계에 활용했다.
만하임 멀티할레의 구조와 유지관리 문제는 무엇인가?
멀티할레는 가는 목재 각재를 격자로 조립한 뒤 휘어 올린 자유곡면 목재 셸이다. 적은 재료로 큰 경간을 만들었지만 막재의 누수, 목재와 접합부의 노후화가 발생해 지속적인 조사와 보강이 필요해졌다.
프라이 오토의 집은 그의 건축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레온베르크-바름브론의 하우스 오토는 1969년 프라이 오토와 로브 크리어가 함께 설계했으며 그의 생활과 연구가 만난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다만 공개된 작품 기록만으로 실제 거주 경험이나 가족의 만족도까지 그의 철학과 일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참고문헌
- The Hyatt Foundation, Frei Otto 2015 Laureate Media Kit, Pritzker Architecture Prize, 2015
- Ludwig Glaeser, The Work of Frei Otto, The Museum of Modern Art, 1972
- Winfried Nerdinger 편, Frei Otto: Complete Works: Lightweight Construction, Natural Design, Birkhäuser, 2005
- Irene Meissner·Eberhard Möller, Frei Otto: A Life of Research, Construction and Inspiration, DETAIL, 2015
- Georg Vrachliotis, Frei Otto, Carlfried Mutschler: Multihalle, Spector Books, 2017
- Frei Otto 편, Multihalle Mannheim, IL 13, Krämer, 19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