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건축가?2026. 7. 17.by aclstoryji

시장의 장사, 경기장의 시야, 수로의 흐름처럼 서로 다른 사용 조건을 먼저 읽고, 그 조건에 맞는 구조 형식을 찾아낸 건축가 "에두아르도 토로하"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에두아르도 토로하, 얇은 콘크리트에 힘의 이유를 남기다

시장과 경마장, 사라진 경기장의 지붕을 따라 구조가 형태가 되기 전 거쳐야 했던 질문을 더듬는다.

에두아르도 토로하(Eduardo Torroja, 1899–1961)는 스페인을(를) 대표하는 구조 공학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에두아르도 토로하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건축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손바닥이 먼저 묻는 것

비가 그친 뒤 발전소 외부의 콘크리트 벽에 손바닥을 대면 차가움보다 먼저 미세한 거칠기가 느껴진다. 거푸집 이음선, 보수 모르타르의 다른 색, 빗물이 지나간 자국. 벽은 말이 없지만 자신이 견뎌 온 시간을 표면에 남긴다. 에두아르도 토로하의 알헤시라스 시장 사진을 보다가 나는 문득 그 돔 가까이에 서 보고 싶어졌다. 50미터에 가까운 공간을 덮는 지붕이 손끝에서는 얼마나 얇고 단단하게 느껴질까. 차갑기만 할까, 아니면 큰 힘을 조용히 나눠 가진 재료 특유의 긴장감이 전해질까.

나는 아직 그곳에 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진 속 콘크리트의 온도나 냄새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장에서 벽체를 점검할 때 배운 것은 있다. 넓은 면보다 모서리와 이음부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 토로하의 구조도 멀리서 보면 매끈한 곡선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지점과 가장자리, 채광부와 보수 흔적에서 진짜 판단이 시작될 것이다.

Zarzuela HippodromePhoto by Jlastras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에두아르도 토로하, 형태보다 먼저 힘의 이유를 묻다

에두아르도 토로하는 1899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1961년 같은 도시에서 생을 마친 스페인의 토목·구조공학자였다. 1923년 마드리드의 토목공학 교육과정을 마친 뒤 교량과 수로, 건축 구조를 오가며 일했고, 설계자이면서 연구자와 교육자, 제도와 기준을 만드는 조직가로도 활동했다. 그의 이름이 얇은 콘크리트 셸과 함께 기억되지만, 그를 곡면을 잘 만든 사람으로만 부르면 중요한 절반을 놓친다.

그가 1957년에 펴낸 『Razón y ser de los tipos estructurales』의 제목에는 그의 태도가 압축되어 있다. 구조 형식에는 저마다 존재할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는 유행하는 외관보다 재료의 성질, 힘의 흐름, 시공 조건, 사용 목적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발전소 설비를 볼 때도 비슷하다. 배관의 굽힘 하나, 지지대의 간격 하나가 보기 좋으라고 존재하지 않는다. 압력과 열팽창, 진동, 점검 동선이 모여 그 모양을 만든다. 토로하에게 구조는 형태를 꾸미는 뼈대가 아니라, 형태가 태어나기 전 제출해야 하는 근거서에 가까웠다.

Tempul AqueductPhoto by El Panter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알헤시라스의 돔, 시장의 소음을 한 장으로 덮다

알헤시라스 시장은 건축가 마누엘 산체스 아르카스와 에두아르도 토로하가 협업해 1934년부터 1935년 사이에 완성한 건물이다. 여덟 지점에 기대는 철근콘크리트 돔은 약 47.6~47.8미터 규모의 공간을 덮는다. 최소 두께는 자료에 따라 8센티미터 또는 10센티미터로 기록되고, 지점 가까이에서는 훨씬 두꺼워진다. 수치의 차이는 남겨 두는 편이 정직하다. 분명한 것은 그 넓이에 비해 매우 얇은 막이었고, 얇음은 재료를 무작정 덜어 낸 결과가 아니라 곡률과 가장자리, 인장 링이 함께 일하도록 만든 결과라는 점이다.

돔 한가운데에는 약 10미터 폭의 팔각형 채광부가 있어 빛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사진으로 보면 빛은 천장을 환하게 칠하기보다 시장 중앙에 밝은 우물을 파는 듯하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생선을 고르고, 상인은 물건을 옮기며, 냄새와 목소리는 둥근 면을 타고 섞일 것이다. 구조가 대단하다는 말보다 나는 이 일상이 더 궁금하다. 거대한 지붕이 시장을 기념비로 만들면서도 장사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았는지, 여름의 열기와 바닷바람, 습기와 누수를 어떻게 견뎌 왔는지 말이다.

만약 그 벽을 만질 수 있다면 완벽하게 매끈한 표면만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 사용된 시장의 콘크리트에는 도장과 보수, 먼지와 손때가 겹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촉감은 영웅적인 구조 계산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줄 것 같다. 대담함과 생활감, 그리고 누군가 매일 닦고 고쳐 온 시간이 한 표면에서 만나는 감정. 콘크리트는 돌처럼 침묵하지만, 유지관리의 흔적만큼은 숨기지 못한다.

사르수엘라의 처마와 사라진 레콜레토스

마드리드의 사르수엘라 경마장 관람석은 건축가 카를로스 아르니체스와 마르틴 도밍게스, 구조공학자 에두아르도 토로하의 협업으로 설계되었다. 공사는 1935년에 시작됐지만 스페인 내전으로 중단되어 1941년에 문을 열었다. 물결처럼 이어지는 캔틸레버 셸은 바깥 끝에서 약 5센티미터, 지점 부근에서 약 14.5센티미터 두께로 변하며 12미터가 넘게 관중석 위로 뻗는다. 숫자를 알고 사진을 다시 보면 지붕은 날개보다 얇은 공구처럼 보인다. 햇빛과 비를 잘라 내기 위해 정확한 각도로 내민 공구.

하지만 얇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구조가 되지는 않는다. 얇은 가장자리는 빗물과 온도 변화에 오래 노출되고, 균열이나 방수층의 결함이 생기면 수분과 염분이 철근 쪽으로 접근할 수 있다. 셸 구조의 효율은 설계 단계에서 빛나지만, 그 효율을 수십 년 동안 유지하는 일은 배수구와 접합부, 표면 보호와 점검 기록 같은 작고 반복적인 업무에 달려 있다. 발전소에서 안전을 지키는 것도 대개 그런 일이다. 눈에 띄지 않는 항목을 예정된 날에 다시 확인하는 것.

프론톤 레콜레토스는 이 낙관에 균열을 낸다. 세쿤디노 수아소와 토로하가 설계한 1935년의 경기장은 두 개의 원통형 셸과 긴 채광부로 약 55미터 길이의 운동 공간을 덮었다. 내전 중 폭격으로 큰 손상을 입은 지붕은 1939년 무너졌고, 건물은 뒤에 철거되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이를 단순히 얇은 구조의 실패라고 부르는 것은 부정확하다. 설계가 상정하지 않은 전쟁의 충격과 손상, 충분히 끝내지 못한 보강이 겹쳤다. 토로하 역시 훗날 다시 짓는다면 보강 리브를 두겠다는 취지로 돌아봤다. 대담한 계산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계산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한 문장인지도 모른다.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토로하를 따라가는 여행

한국에서 토로하의 작업을 따라간다면 한 번의 긴 순례보다 두 번의 짧은 여행이 현실적이다. 첫 여정은 마드리드에 숙소를 두고 사르수엘라 경마장과 북측 관람석 아래의 에두아르도 토로하 박물관을 묶는 방식이다. 다음 날에는 옛 프론톤 레콜레토스가 있던 비야누에바 거리 2번지 부근을 찾아가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원래 건물이 아니라 부재다. 오래된 사진을 휴대전화 화면에 띄우고 현재의 거리와 겹쳐 보는 일은, 남아 있는 건물을 보는 것과 다른 종류의 답사가 될 것이다.

남부 일정은 알헤시라스를 별도로 잡는 편이 낫다. 마드리드에서 장거리 철도를 이용하거나 말라가 방면을 거쳐 이동한 뒤, 시장이 실제로 움직이는 오전 시간에 내부를 천천히 걷는 동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이 허락하면 헤레스데라프론테라 외곽의 템풀 수로교를 이어 붙인다. 다만 수로교는 도심 건축 답사처럼 접근이 단순하지 않으므로 현지 이동수단까지 계산해야 한다. 여행 예산이 빠듯한 나에게는 마드리드 편과 안달루시아 편을 나누는 계획이 오히려 솔직하다.

현장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물 곳은 전체가 잘 보이는 촬영 지점이 아니라 손이 닿는 높이의 기둥과 벽, 지붕이 지점으로 내려오는 모서리일 것 같다. 보호가 필요한 표면을 함부로 만질 수는 없겠지만, 가까이에서 재료의 입자와 보수 경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토로하의 건축 여행은 유명한 곡선을 수집하는 일정이 아니라, 힘이 어디에서 모이고 어디에서 풀리는지 발걸음으로 확인하는 여행이어야 한다.

결론 — 구조는 벽보다 오래 손에 남는다

에두아르도 토로하가 남긴 핵심은 콘크리트를 얇게 만드는 기술 하나가 아니다. 그는 시장의 장사, 경기장의 시야, 수로의 흐름처럼 서로 다른 사용 조건을 먼저 읽고, 그 조건에 맞는 구조 형식을 찾아냈다. 알헤시라스의 돔은 중앙의 넓은 장터를 비웠고, 사르수엘라의 처마는 관중의 시야 앞에서 기둥을 물렸으며, 레콜레토스의 지붕은 운동과 자연채광을 한 단면 안에 넣으려 했다. 구조는 공간 뒤에 숨은 계산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용한 장치였다.

현장에서 나는 벽을 사진의 배경으로 보지 않는다. 물과 불, 먼지와 소음, 충격과 진동을 어느 쪽에서 막아야 하는지부터 생각한다. 토로하를 읽고 나면 그 습관에 질문 하나가 더 붙는다. 적게 쓰는 것이 정말 효율적인가, 아니면 적게 쓴 재료를 오래 지킬 방법까지 마련했을 때 비로소 효율적인가.

언젠가 알헤시라스의 벽 가까이에 서게 된다면 나는 먼저 손바닥을 펴 볼 것 같다. 그리고 곡면의 대담함보다 그 얇음을 수십 년 동안 지켜 온 사람들의 일을 생각할 것이다. 좋은 구조는 계산이 끝난 순간 완성되는가. 아니면 다음 세대의 손이 닿을 때까지 버티는 동안 비로소 완성되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에두아르도 토로하는 건축가인가 구조공학자인가?

에두아르도 토로하는 스페인의 토목·구조공학자이다. 다만 건축가들과 긴밀히 협업해 공간의 형태와 구조가 동시에 결정되도록 했기 때문에 근대건축사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다뤄진다.

알헤시라스 시장 돔은 얼마나 얇은가?

약 47.6~47.8미터 규모의 공간을 덮는 셸이며 최소 두께는 자료에 따라 약 8센티미터 또는 10센티미터로 기록된다. 지점에서는 두께가 증가하고, 가장자리의 인장 시스템과 곡면 전체가 함께 힘을 전달한다.

사르수엘라 경마장 지붕은 왜 유명한가?

관중석 앞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 12미터가 넘게 돌출된 철근콘크리트 캔틸레버 셸이기 때문이다. 끝부분 두께가 약 5센티미터에 불과해 구조 효율과 공간 사용이 한 형식 안에서 만난다.

프론톤 레콜레토스는 지금도 볼 수 있는가?

원래의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셸 지붕은 내전 중 손상을 입은 뒤 1939년 붕괴했고, 건물은 1973년 철거되어 현재 답사는 옛 위치와 사진·도면을 겹쳐 보는 방식이 된다.

한국에서 에두아르도 토로하 건축 여행을 어떻게 짜면 좋은가?

마드리드에서 사르수엘라 경마장과 토로하 박물관, 프론톤 레콜레토스의 옛 터를 묶는 일정이 첫 단계이다. 알헤시라스 시장과 템풀 수로교는 안달루시아 남부 일정으로 분리하면 이동비와 체력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참고문헌

  1. Eduardo Torroja, Razón y ser de los tipos estructurales, Instituto Técnico de la Construcción y del Cemento, 1957
  2. José Antonio Fernández Ordóñez·José Ramón Navarro Vera, Eduardo Torroja. Ingeniero - Engineer, Ediciones Pronaos, 1999
  3. Ramon Graus, Bridging the Gap: Engineer Eduardo Torroja in the Post-War Networks of Modern Architecture, Construction History 38(1), 2023
  4. J. A. Lozano-Galant·I. Payá-Zaforteza, Structural Analysis of Eduardo Torroja’s Frontón de Recoletos’ Roof, Engineering Structures 33, 2011
  5. A. Castillo 외, Evaluación y monitorización de la durabilidad de las cubiertas del Hipódromo de la Zarzuela de Madrid, Informes de la Construcción 63(5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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