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그레이브스, 건물의 얼굴은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가
고전의 기둥과 색채를 다시 불러낸 건축가를 따라가며, 잘 보이는 건물과 오래 머물기 좋은 공간 사이의 거리를 생각한다.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 1934–2015)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근대건축이 밀어낸 색채와 장식, 기억의 형상을 현대 도시로 다시 불러들였다.
- 포틀랜드 빌딩은 포스트모던 건축의 상징이 되었지만 실내환경과 외피 유지관리의 한계도 함께 드러냈다.
- 그가 남긴 핵심 질문은 건물이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사람에게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을 가질 수 있는가이다.
Photo by Steve Morgan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도면의 색연필은 언제 구조보다 먼저 말을 거는가
실내건축과 시절, 입면도에 살구색과 청록색을 칠한 적이 있다. 교수는 색이 예쁜지 묻지 않고 왜 그 면에 그 색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색은 마감표의 한 줄이라고 생각했지, 건물이 세상에 건네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건물을 사진으로 볼 때마다 그 질문이 돌아온다. 포틀랜드 빌딩의 붉은 띠와 청록색 장식, 과장된 기둥과 커다란 쐐기돌은 구조적 필요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입을 열기도 전에 넥타이부터 고쳐 매는 사람 같다. 조금 우스우면서도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다.
그레이브스는 1934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나 신시내티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1964년 자신의 사무소를 열었다. 초기에는 피터 아이젠만, 찰스 과스메이, 존 헤이덕, 리처드 마이어와 함께 ‘뉴욕 파이브’로 묶였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백색의 추상적 문법을 벗어나 색채와 고전적 형상, 일상의 상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2015년 프린스턴에서 생을 마쳤다.
Photo by Hans Hillewaert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마이클 그레이브스는 왜 상자에 리본을 둘렀을까
1982년 완공된 포틀랜드 빌딩은 15층 규모의 시청 업무시설이다. 입면은 아래와 가운데, 위를 구분하는 고전적 삼단 구성을 따르고, 중앙 출입구 양옆에는 실제 구조보다 훨씬 크게 읽히는 기둥 형상이 붙어 있다. 거대한 리본을 두른 상자처럼 보이지만, 그 리본은 포장지가 아니라 ‘이것은 시민의 건물’이라고 적은 표지판에 가깝다.
그레이브스는 근대건축의 유리 상자가 도시마다 같은 얼굴을 갖는 상황에 반대했다. 건물을 읽을 수 있게 만들고 싶어 했다. 입구는 입구처럼, 꼭대기는 꼭대기처럼 보여야 하며, 색과 장식은 죄가 아니라 기억을 돕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차가운 근대건축에 색을 칠한 운동이 아니다. 잊힌 건축의 단어를 가져와 현재의 문장 속에서 뜻을 바꿔 쓴 시도였다.
그 변화는 세 단계로 읽힌다. - 초기 주택에서는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백색 기하학을 탐구했다. - 1970년대 후반에는 벽, 기둥, 아치 같은 익숙한 형상을 다시 불러냈다. - 1980년대 이후에는 공공건축과 상업건축에서 색채와 상징을 도시 규모로 확대했다.
얇은 외피 위에 오래된 건축의 표정을 그릴 수는 있지만, 그 표정이 안쪽의 불편을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한다.
Photo by KM Newnham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웃는 입면 뒤에서 하루 여덟 시간을 보낸다면
포틀랜드 빌딩은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얻었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좋은 건물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한된 예산의 디자인빌드 방식으로 시공된 뒤 외피와 기반 설비가 노후했고, 작은 창과 깊은 평면 때문에 내부 환경에 대한 불만도 이어졌다. 결국 대규모 보수공사를 거쳐 2020년 다시 문을 열었다.
실무 현장에서는 입면의 의도가 아무리 선명해도 실링이 갈라지고 배수 경사가 어긋나면 건물의 평판이 빗물과 함께 내려앉는다. 외장 패널의 줄눈 폭 몇 밀리미터, 창 주변 방수층의 연속성, 점검구 앞에 확보된 작업 공간이 준공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건물의 열 번째 겨울은 그런 부분에서 결정된다.
얇은 외피 위에 오래된 건축의 표정을 그릴 수는 있지만, 그 표정이 안쪽의 불편을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한다. 이것이 포틀랜드 빌딩을 쉽게 찬양할 수 없는 이유다. 동시에 외관의 실패만으로 그 시도가 던진 질문까지 지우기도 어렵다. 건축은 기능을 만족한 뒤 침묵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소 서툴더라도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가.
Photo by Patrick Pelletier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도시를 향해 몸을 숙인 고층건물
1985년 켄터키주 루이빌에 완공된 26층 휴매나 빌딩에서는 그레이브스의 태도가 조금 더 치밀해진다. 타워를 곧장 보도 위에 세우지 않고 저층부를 앞으로 당겨 주변의 오래된 가로벽 높이에 대응했다. 오하이오강을 향한 상부에는 활처럼 휘어진 공용 공간을 두고, 그 아래 철골 트러스는 강을 건너는 교량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으로 보면 건물은 도시를 향해 몸을 숙였다가, 강 쪽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것처럼 보인다. 포틀랜드 빌딩의 기호가 한 장의 입면 위에 붙어 있었다면, 휴매나 빌딩의 기호는 저층부와 타워, 꼭대기의 매스 변화 속으로 들어갔다. 장식이 건물의 문신에서 관절로 옮겨간 셈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전망이 좋은 상부 공간을 최고경영자실이 아니라 직원 라운지와 공용시설에 배정한 설계다. 이것이 모든 직원에게 쾌적한 근무를 보장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장 비싼 높이를 누가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레이브스가 내놓은 답은 분명하다. 건물의 위계는 조직의 위계와 반드시 같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곱 난쟁이가 지붕을 받치면 건축은 장난이 되는가
그레이브스의 디즈니 건축 앞에서는 판단이 더 어려워진다. 캘리포니아 버뱅크의 팀 디즈니 빌딩에는 약 19피트 높이의 일곱 난쟁이가 박공을 떠받친다. 사진의 시점을 낮춰 보면 고전 신전의 기둥 자리에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서 있는 셈이다. 그는 오락을 만드는 진지한 회사를 위한 사옥을 설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지나치다고 느꼈다. 건축이 기업의 캐릭터 상품처럼 보일 위험이 있고, 상징이 너무 크게 말하면 사람은 공간보다 이야기를 먼저 소비한다. 하지만 정색한 유리 커튼월만이 기업의 품위를 보증한다는 생각 또한 하나의 관습이다. 디즈니가 만드는 세계를 감춘 채 무표정한 사옥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더 정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레이브스는 건축에서 주전자와 가구, 손잡이와 생활용품으로 작업 범위를 넓혔다. 2003년 질병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뒤에는 병실과 휠체어, 보행 보조기구처럼 몸 가까이에 있는 디자인에 더욱 집중했다. 그의 후기 작업은 장식을 좋아한 건축가의 곁가지가 아니라, 디자인의 최종 치수가 사람의 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더 절실히 확인한 과정으로 읽힌다.
결론: 마이클 그레이브스가 건물에 표정을 돌려준 뒤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근대건축을 무너뜨린 사람이 아니라, 근대건축이 지워 버렸다고 여긴 몇 가지를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사람이다. 색, 장식, 기억, 유머, 그리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형상이다. 그 선택은 포틀랜드 빌딩처럼 도시의 기억에 깊게 남았고, 동시에 채광과 외피 성능, 유지관리라는 현실적인 대가를 드러냈다.
그의 건축을 보고 있으면 ‘잘 보이는 건물’과 ‘잘 사용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만 고를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 무겁다. 기능만 정확한 공간은 오래 일할 수 있게 해 줄지 몰라도 오래 기억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기억에 남는 얼굴이 실내의 불편을 보상하지도 못한다. 건축가는 둘 사이의 좁은 줄눈을 끝까지 메워야 한다.
여행 경비를 계산하다가 포틀랜드와 루이빌이 표시된 지도를 닫을 때가 있다. 화면에는 색이 강한 건물 두 채가 남고, 내 손에는 가 보지 못한 도시의 거리만 남는다. 그래도 그레이브스 덕분에 다음 현장에서 입면을 볼 때 한 가지를 더 묻게 된다. 이 건물은 무엇을 견디도록 만들어졌으며, 동시에 누구에게 어떤 얼굴을 보여 주려 하는가.
마이클 그레이브스가 설계한 휴매나 빌딩의 완공 연도는 언제인가
- 가. 1982년
- 나. 1985년
- 다. 1990년
정답 확인
정답: 나. 휴매나 빌딩은 켄터키주 루이빌에 1985년 완공되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왜 포스트모던 건축가로 불리는가?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초기의 백색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고전 건축의 기둥, 박공, 아치와 강한 색채를 현대 건물에 다시 사용했다. 역사적 형상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확대하고 단순화해 새로운 기호로 바꾸었기 때문에 미국 포스트모던 건축의 중심 인물로 평가된다.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포틀랜드 빌딩이 논란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포틀랜드 빌딩은 과장된 고전 요소와 색채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작은 창과 깊은 평면, 외피와 설비의 노후 문제로 실제 업무환경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건축사적 상징성과 사용성·유지관리의 한계가 한 건물에 함께 나타난 사례이다.
휴매나 빌딩은 포틀랜드 빌딩과 무엇이 다른가?
휴매나 빌딩은 장식을 입면에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저층부, 타워, 상부 공용공간의 매스 구성으로 도시와 주변 건물에 대응했다. 특히 기존 가로의 높이를 존중한 저층부와 오하이오강을 향한 상부 공간이 포틀랜드 빌딩보다 입체적인 도시 해석을 보여 준다.
마이클 그레이브스가 설계한 디즈니 건축의 특징은 무엇인가?
팀 디즈니 빌딩에서는 일곱 난쟁이가 박공을 떠받치고, 월트 디즈니 월드의 스완 앤드 돌핀 호텔에서는 거대한 동물 조형물이 건물의 정체성을 만든다. 고전 건축의 구성과 대중문화의 캐릭터를 결합해 기업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제품 디자인에도 어떤 영향을 남겼는가?
그레이브스는 알레시 주전자와 생활용품, 가구를 설계하며 건축의 색채와 형태 언어를 손으로 만지는 물건의 크기로 옮겼다. 장애를 얻은 뒤에는 병실, 휠체어와 이동 보조기구의 사용성을 개선하는 디자인에도 힘을 쏟았다.
참고문헌
- Peter Eisenman, Michael Graves, Charles Gwathmey, John Hejduk, Richard Meier, Five Architects, Wittenborn & Company, 1972
- Charles Jencks, 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 Academy Editions, 1977
- Robert Venturi,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Museum of Modern Art, 1966
- Michael Graves Architecture & Design, The Portland Building, 공식 프로젝트 아카이브
- Michael Graves Architecture & Design, The Humana Building, 공식 프로젝트 아카이브
- The Walt Disney Company D23, Remembering Michael Grave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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