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마이어, 흰색을 고른 게 아니라 흰색만 남긴 사람
60년 동안 같은 색을 쓴 건축가의 도면을 실무자의 눈으로 다시 읽는다.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1934–)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백색 근대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리처드 마이어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 리처드 마이어는 60년 동안 흰색과 격자라는 두 규칙만 밀어붙인 건축가다.
- 그의 가장 유명한 건물 게티 센터는 정작 백색 패널을 포기하고 트래버틴으로 바뀐 타협의 결과다.
- 흰 벽은 아무것도 감추지 못하는 벽이고, 그 점이 이 건축가의 진짜 주제다.
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흰 페인트를 지정해 본 사람은 안다
실내건축과 시절 도면에 처음 흰색을 지정했을 때, 지도교수가 색번호를 물었다. 흰색이요, 라고 답했다가 다시 물음을 들었다. 어느 흰색이냐고. 그날 이후 흰색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반사율이 다르고, 밑바탕이 비치고, 옆에 무엇이 놓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이 된다.
리처드 마이어는 그 어려운 색을 60년 동안 썼다. 1934년 미국 뉴저지 뉴어크에서 태어나 코넬대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1963년 자신의 사무소를 열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건물을 흰색으로 마감했다.
한 색을 오래 쓰는 일은 취향이 아니다. 도망갈 곳을 스스로 없애는 결정이다. 흰 벽에는 오차가 전부 드러난다.
Photo by J. Paul Getty Museum / CC0 / Wikimedia Commons다섯 명이 코르뷔지에를 다시 읽던 해
1972년 뉴욕에서 다섯 건축가의 작업을 묶은 책 『Five Architects』가 나왔다. 마이어, 피터 아이젠만, 마이클 그레이브스, 찰스 과스메이, 존 헤이덕. 뒤에 뉴욕 파이브라 불렸다. 이들은 1920년대 르 코르뷔지에의 백색 시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
같은 출발점에서 갈라진 방향이 흥미롭다. 아이젠만은 격자를 의심하는 쪽으로 갔다. 그레이브스는 몇 년 뒤 색과 장식으로 돌아섰다. 마이어만 남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부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한 가지만 계속 파는 사람의 축적은 부럽다. 다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흔들려 본 사람이 얻는 것을 얻지 못한다.
흰 벽은 아무것도 감추지 못하는 벽이다.
Photo by Unknown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1967년 다리엔, 유리 뒤에서 겨울을 나는 일
스미스 하우스는 1967년 미국 코네티컷 다리엔에 완공됐다. 바다를 향한 면은 유리, 등 뒤쪽은 닫힌 벽.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을 나눠 놓은 구성이다. 사진으로 보면 나무들 사이에 흰 상자가 하나 떠 있는 것 같다.
실무의 눈으로는 다른 것이 먼저 보인다. 유리와 흰 마감으로 이루어진 집은 준공 시점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고, 그 뒤로는 계속 관리의 문제가 된다. 특히 다음 세 가지다.
- 줄눈과 실링재: 자외선과 온도차로 10년 안에 손을 봐야 한다 - 유리면 결로: 남향 유리벽 주택의 겨울 아침은 늘 물기와 싸운다 - 흰 마감의 오염: 도장이든 패널이든 이물이 앉으면 즉시 눈에 띈다
다만 마이어 특유의 백색 금속 패널은 현장 도장이 아니라 공장에서 구워 낸 에나멜 마감 계열이다. 쉽게 누렇게 변한다는 식의 단정은 사실과 다르다. 관리가 필요한 건 마감재 자체보다 그 사이의 줄눈이다.
Photo by DubiousSauce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백색을 지정했다가 돌로 바꾼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이름이 대중에게 가장 널리 닿은 건물은 1997년 개관한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센터일 것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그의 백색 문법이 한 번 꺾인 자리다. 주변 지역의 반대로 늘 쓰던 백색 금속 패널을 언덕 전체에 쓸 수 없었고, 결국 이탈리아 티볼리 일대에서 온 트래버틴이 주 마감이 됐다.
이 돌의 처리 방식이 흥미롭다. 매끈하게 갈지 않고 결을 따라 쪼갠 면을 그대로 노출했다. 화석과 구멍이 표면에 남는다. 재료실에서 석재 샘플에 손을 대 보던 감각을 떠올리면, 갈아 낸 석재와 쪼갠 석재는 손끝에 닿는 온도가 다르다. 갈아 낸 면은 미끄럽고 차다. 쪼갠 면은 손을 잡아 둔다.
타협이 오히려 건물을 살린 경우다. 백색 패널로만 덮였다면 게티는 언덕에 얹힌 기계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추측이지만, 마이어가 가장 원하지 않은 결과가 그가 만든 건물 중 가장 오래 이야기될 결과가 됐다.
Photo by Basher Eyre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격자는 신념인가, 아니면 도망칠 곳인가
마이어의 도면에는 늘 격자가 깔려 있다. 게티 센터는 대략 30인치를 기본 단위로 삼은 격자 위에서 돌 크기와 창 위치가 결정됐다고 알려져 있다. 치수 하나가 건물 전체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현장에서 일해 본 사람은 이 방식의 힘을 안다. 기준 치수가 하나면 시공 오차를 판정할 잣대가 생긴다. 반대로 기준이 흔들리는 도면은 현장에서 매번 다시 결정해야 하고, 결정 주체가 흐려지면 책임도 흐려진다.
동시에 의문도 남는다. 격자는 시공을 편하게 하지만 사람을 편하게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정해진 눈금 위에 앉은 벽 사이를 걸을 때, 몸은 종종 자기 걸음이 아니라 그 눈금의 걸음을 걷게 된다.
결론: 리처드 마이어가 흰 벽에 남겨 둔 것
정리하면 이렇다. 리처드 마이어는 1934년 뉴어크에서 태어나 뉴욕 파이브의 한 사람으로 출발했고, 1984년 프리츠커상을 받았으며, 스미스 하우스에서 게티 센터까지 백색과 격자라는 두 개의 규칙을 거의 바꾸지 않고 밀고 나갔다. 그의 건축은 새로운 것을 계속 찾은 기록이 아니라, 한 가지를 끝까지 밀어붙인 기록이다.
흰 벽은 아무것도 감추지 못하는 벽이다. 나는 이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춘다. 도면을 그리는 일도, 현장을 관리하는 일도 결국 감출 수 있는 것과 감출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일이다.
사진으로만 본 게티의 램프를 언젠가 직접 오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만약 그 앞에 선다면 먼저 확인하고 싶은 건 태평양 쪽 전망이 아니다. 쪼갠 트래버틴의 줄눈이다. 준공 이후 30년 가까이 흐른 자리를 손으로 만져 보고 싶다.
게티 센터의 주 마감재가 백색 금속 패널이 아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가. 예산이 부족했다
- 나. 주변 지역의 반대가 있었다
- 다. 패널 생산이 중단됐다
정답 확인
정답: 나. 지역의 반대로 백색 패널을 전면에 쓸 수 없어 티볼리산 트래버틴이 주 마감이 됐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리처드 마이어는 왜 흰색만 쓰는가?
그는 흰색이 빛의 변화와 형태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색이라고 설명해 왔다. 흰 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화면 역할을 한다. 다만 오차와 오염도 함께 드러난다는 부담을 안는 선택이다.
게티 센터는 흰색 건물이 아닌가?
게티 센터의 주 마감은 이탈리아 티볼리 일대에서 온 트래버틴이다. 주변 지역의 반대로 늘 쓰던 백색 금속 패널을 전면에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마이어 작업 가운데 재료 구성이 가장 예외적인 건물이 됐다.
뉴욕 파이브는 무엇인가?
1972년 책 『Five Architects』로 묶인 마이어, 아이젠만, 그레이브스, 과스메이, 헤이덕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들은 1920년대 르 코르뷔지에의 백색 시기를 다시 해석했다. 이후 각자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리처드 마이어 대표작은 무엇인가?
스미스 하우스,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 게티 센터, 로마의 주빌리 교회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규모와 용도는 다르지만 백색 마감과 격자 체계라는 공통 문법을 공유한다.
백색 건축은 유지관리가 어렵지 않은가?
마감재보다 줄눈과 실링재가 먼저 문제가 된다. 자외선과 온도차로 탄성이 떨어지면 오염이 선을 따라 번지고, 흰 바탕에서는 그것이 즉시 눈에 띈다. 백색 건축의 유지관리는 사실상 접합부 관리다.
참고문헌
- Kenneth Frampton, 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 Thames & Hudson
- Arthur Drexler 외, Five Architects, Wittenborn, 1972
- Richard Meier, Building the Getty, Alfred A. Knopf, 1997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1984 Laureate: Richard Me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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