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아이젠만, 살 수 있는 집과 값을 치르는 집
계단은 아무 층에도 닿지 않고 기둥은 침실을 가로지른다. 그런데도 사람이 그 안에서 30년을 살았다.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 1932–)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해체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피터 아이젠만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 피터 아이젠만은 격자를 겹쳐 나온 결과를 사람의 편의를 위해 지우지 않은 건축가다.
- 하우스 6의 계단은 아무 층에도 닿지 않고, 웩스너 센터는 미술관인데 작품 걸기가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 그런데 베를린 추모비에서 그는 설명을 거의 하지 않았고, 그게 가장 오래 남을 작업이 됐다.
Photo by Ian Petticrew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건축 여정_건축가와 함께한 곳

도면에 계단이 그려져 있는데 아무 층에도 닿지 않는다
실내건축과 3학년 설계 과제에서 계단을 처음 제대로 그렸다. 단높이 180밀리, 단너비 260밀리. 계단은 반드시 어딘가에 닿아야 한다고 배웠다. 시작점과 도착점이 없으면 그건 계단이 아니라 선이다.
피터 아이젠만의 하우스 6 도면을 처음 본 건 그 무렵이었다. 계단이 하나 더 있었다. 뒤집힌 채로 매달려 있고, 어느 바닥에도 닿지 않는다. 오르는 용도가 아니다. 나는 그게 농담인 줄 알았다.
농담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사람이 살았다.
케임브리지에서 배운 문법으로 집의 문법을 흔들다
피터 아이젠만은 1932년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코넬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컬럼비아를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콜린 로우였고, 학위논문 제목은 「근대건축의 형식적 기초」다. 그는 처음부터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의 문법을 읽는 사람으로 출발했다.
1967년 뉴욕에 건축도시연구소를 세우고 저널 『오포지션스』를 냈다. 1972년에는 리처드 마이어, 마이클 그레이브스, 찰스 과스미, 존 헤이덕과 함께 『다섯 건축가』로 묶여 '뉴욕 파이브'로 불렸다. 다섯 명 모두 초기 르코르뷔지에의 흰 상자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갈라진 방향은 서로 꽤 멀다.
그가 해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묶인 건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해체주의 건축' 전시 이후다. 다만 아이젠만 본인은 그 라벨과 계속 거리를 두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스타일을 만든 게 아니라 절차를 만들려 했다.
살 수 없는 집이 아니라 사는 데 값을 치르는 집이다.
Photo by fusion-of-horizons / CC BY 2.0 / Wikimedia Commons기둥이 침실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하우스 6는 미국 코네티컷주 콘월에 1975년 완공됐다. 평론가 수잰 프랭크와 그 배우자의 집이다. 여기서 아이젠만이 한 일은 형태를 조각하는 게 아니라 격자를 겹치고 회전시킨 결과를 그대로 굳힌 것이다. 결과물은 이렇다.
- 아무 층에도 닿지 않는 두 번째 계단 - 주 침실 중앙을 가로지르는 슬롯 때문에 부부 침대를 하나로 놓을 수 없는 구성 - 구조 부재로 읽히지만 실제 하중과는 어긋나게 배치된 기둥과 보 - 벽과 창의 위치가 방의 용도보다 격자의 좌표를 먼저 따르는 배열
여기서 흔히 나오는 결론은 '살 수 없는 집'이다. 나는 그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집에는 사람이 30년 넘게 살았고, 준공 뒤 균열과 누수로 큰 보수를 거쳤다. 살 수 없는 집이 아니라 사는 데 값을 치르는 집이다. 그게 훨씬 무섭다.
미술관을 지었는데 미술품이 걱정된다
1989년 오하이오주립대학에 웩스너 시각예술센터가 완공됐다. 캠퍼스의 서로 다른 두 격자가 어긋나는 지점을 그대로 건물의 논리로 삼았다. 사진으로 보면 흰 격자 구조물이 기존 벽돌 건물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개관 이후 전시 운영 측면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천장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 요소, 기울어진 벽, 유리 개구부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작품 걸기와 보존 조건에 불리하다는 비판이다. 1996년 신시내티대학에 완공된 아로노프 디자인예술센터도 동선의 방향 감각이 어렵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마감재 샘플 보드를 만지던 감각이 떠올랐다. 도면에서는 재료가 해치 무늬 하나로 끝나지만, 손을 대보면 전부 온도가 다르다. 격자도 같다. 종이 위에서 격자는 두께가 없다. 세워 놓으면 사람의 어깨높이를 가진다.
2,711개의 콘크리트 덩어리, 아무것에도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베를린의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는 2005년 완공됐다. 약 1만 9천 제곱미터 대지에 2,711개의 콘크리트 스텔레가 놓였다. 형상은 단순하다. 높이만 다르고, 바닥은 파도처럼 오르내린다. 어떤 스텔레에도 이름이 없다.
실무자의 눈으로 먼저 보이는 건 시공 난도다. 노출 마감의 대형 프리캐스트 부재를 수천 개, 서로 다른 치수로, 바닥 레벨이 계속 변하는 조건에서 세워야 한다. 표면 낙서를 막기 위한 방오 코팅이 적용됐는데, 그 코팅 제조사 계열의 과거 이력을 두고 공사 중 큰 논란이 일었다. 콘크리트의 색이 그토록 오래 정치의 문제가 된 사례는 드물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면 중앙으로 들어갈수록 스텔레가 시야를 덮어 하늘만 남는 구간이 있다. 만약 그 사이에 선다면 나는 아마 치수를 세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아이젠만은 격자를 논리로 쓰지 않고 침묵으로 썼다. 그의 작업 중 가장 설명이 적고, 가장 오래 남을 것이다.
결론: 피터 아이젠만이 도면에서 지우지 않은 것
피터 아이젠만은 건물을 편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이 적었다. 격자를 겹치고 회전시켜 나온 결과를 편의를 위해 지우지 않았다. 하우스 6의 계단은 그래서 남았고, 웩스너의 기울어진 벽도 그래서 남았다. 지우지 않은 것이 그의 서명이다.
실내건축을 배운 사람으로서 나는 이 태도가 불편하다. 우리가 배운 건 사람이 부딪히는 걸 지우는 기술이었다. 문 손잡이 높이, 회전 반경, 마감재의 온도. 그런데 아이젠만을 읽고 나면 한 가지 의심이 남는다. 우리가 지운 것 중에 지우지 않아도 됐던 게 있었을까.
베를린의 스텔레는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처음부터 쓰지 않았다. 나는 그 차이를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다.
베를린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의 스텔레 개수는
- 가. 1,945개
- 나. 2,711개
- 다. 3,300개
정답 확인
정답: 나. 2,711개이며 높이가 서로 다르고 어떤 것에도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피터 아이젠만은 왜 해체주의 건축가로 불리나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해체주의 건축' 전시에 참여한 이후 그 이름으로 널리 묶였다. 다만 본인은 해체주의를 하나의 양식으로 보는 시각과 거리를 두려 했다. 그의 방법은 형태를 부수는 것보다 격자와 규칙을 겹쳐 결과를 도출하는 절차에 가깝다.
피터 아이젠만 하우스 6는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인가
살았다. 의뢰인인 평론가 수잰 프랭크 부부가 오래 거주했고, 준공 후 균열과 누수로 큰 보수를 거쳤다. 다만 침실을 가로지르는 슬롯처럼 일상 사용에 제약을 주는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비 설계자는 누구인가
피터 아이젠만이다. 2005년 완공됐고 2,711개의 콘크리트 스텔레로 구성된다. 어떤 스텔레에도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 추모비의 핵심 결정이다.
웩스너 시각예술센터가 비판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전시 운영 측면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구조 요소와 기울어진 벽, 자연광 유입이 작품 걸기와 보존 조건에 불리하다는 비판이다. 건축적 개념과 미술관의 기능이 부딪힌 대표적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뉴욕 파이브는 무엇이고 아이젠만은 어떤 위치였나
1972년 책 『다섯 건축가』로 묶인 아이젠만, 리처드 마이어, 마이클 그레이브스, 찰스 과스미, 존 헤이덕을 가리킨다. 초기 르코르뷔지에의 흰 상자를 공통 출발점으로 삼았다. 아이젠만은 이 중 가장 이론적이고 문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참고문헌
- Peter Eisenman, The Formal Basis of Modern Architecture, Lars Müller Publishers, 2006
- Peter Eisenman, Houses of Cards,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 Suzanne Frank, Peter Eisenman's House VI: The Client's Response, Whitney Library of Design, 1994
- Philip Johnson and Mark Wigley, Deconstructivist Architecture, The Museum of Modern Art, 1988
- Peter Eisenman, Eisenman Inside Out: Selected Writings 1963-1988, Yale University Pres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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