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뷔스 아우트, 색의 혁명보다 생활의 질서를 설계한 건축가
데 스테일의 선명한 화면에서 출발해 노동자의 좁은 집과 도시의 현실로 걸어 들어간 야코뷔스 아우트의 건축을 읽는다.
야코뷔스 아우트(J.J.P. Oud, 1890–1963)는 네덜란드을(를) 대표하는 데 스테일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야코뷔스 아우트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Theo van Doesburg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흰 벽 앞에서 생활의 무게를 생각하다
사진 속 흰 벽을 오래 바라본다. 창 아래로 이어지는 얇은 수평선, 모서리를 돌아가는 벽,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 낸 입면이 너무 반듯해서 처음에는 차갑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벽 뒤에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가족이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화면의 온도가 달라진다. 야코뷔스 아우트의 건축은 추상적인 구성처럼 보이지만 그가 반복해서 다룬 것은 결국 사람이 잠들고, 씻고, 밥을 먹으며 하루를 견뎌야 하는 작은 집이었다.
나는 발전소 현장에서 배관과 설비가 정해진 간격을 지키며 배치된 모습을 자주 본다. 그 질서는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점검할 수 있어야 하고, 고장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안전해야 한다. 아우트의 노동자주택을 보고 있으면 기능에서 시작된 질서가 어느 순간 조용한 미감으로 바뀌는 과정을 떠올리게 된다. 실용은 반드시 무표정해야 하는가. 그는 그 질문을 집의 크기만 한 공간에서 붙들고 있었다.
Photo by A. J. van der Wal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야코뷔스 아우트와 데 스테일, 가까웠지만 같지는 않았던 길
야코뷔스 요하네스 피터르 아우트는 1890년 네덜란드 퓌르메런트에서 태어나 1963년 바세나르에서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 건축가이다. 그는 1917년 창간된 잡지와 예술운동 데 스테일의 초기 구성원으로 활동했으며, 테오 판 두스뷔르흐와 교류하면서 수평선과 수직선, 비대칭적 균형, 순수한 색채가 건축에 어떤 질서를 만들 수 있는지 탐구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데 스테일 자료 역시 아우트를 운동의 주요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다룬다.
그러나 아우트를 데 스테일의 공식을 건물로 옮긴 사람이라고만 설명하면 그의 고민이 너무 평평해진다. 회화에서는 선과 면이 자율적으로 놓일 수 있지만, 건축의 벽에는 지붕과 바닥의 하중이 걸리고 창문 너머에는 실제 생활이 놓인다. 아우트는 판 두스뷔르흐의 급진적인 조형 실험에 공감하면서도 건축이 구조와 경제성, 거주자의 요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두 사람의 차이는 단순한 불화라기보다 예술의 절대성과 건축의 현실성이 충돌한 결과에 가까웠다.
이 점에서 그는 데 스테일에 속하면서도 데 스테일에 완전히 머물지 않았다. 빨강과 파랑, 노랑을 건물에 적용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제한된 비용으로 반복 가능한 집을 만들고, 그 반복 속에서도 거리가 단조롭게 죽지 않도록 조절하는 일이었다. 아우트가 점차 사회주택으로 이동한 것은 조형적 후퇴가 아니라 건축이 작동하는 장소를 다시 선택한 일이었다.
Photo by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로테르담의 주택, 반복을 도시의 표정으로 바꾸다
아우트는 1918년부터 1933년까지 로테르담의 공공주택 건축가로 일하며 스팡언, 튀선데이컨, 아우트마테네서, 키프후크 등 여러 주거단지를 설계했다. 당시 로테르담은 산업화와 인구 증가로 저렴하고 위생적인 주택이 절실했다. 건축가에게 주어진 과제는 독특한 집 한 채가 아니라 제한된 면적과 예산 안에서 수십 채, 때로는 수백 채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는 일이었다.
1928년경부터 1930년까지 조성된 키프후크 주거단지는 이러한 고민이 가장 응축된 사례이다. 원래 294가구 규모로 계획된 이 단지에서 아우트는 작은 평면을 표준화하고 주택을 연속적으로 배치하면서도, 곡면 처리된 모서리와 상점·교회·광장 같은 요소로 거리의 흐름에 변화를 주었다. 집은 작았고 예산은 빠듯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주거를 단순히 면적이 부족한 집으로 두지 않고 하나의 완결된 동네로 조직하려 했다.
사진으로 보면 키프후크의 흰 벽은 눈에 먼저 들어오지만, 내가 더 오래 보게 되는 것은 창과 출입구의 반복 간격이다. 공장에서 규격화된 부품이 일정한 피치로 이어질 때 유지관리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처럼, 이 주택의 반복도 비용과 시공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다만 기계 설비와 달리 집에는 사람의 기분이 머문다. 아우트는 반복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골목의 꺾임과 모서리의 곡선으로 생활의 리듬을 만들어 냈다.
훅 판 홀란트와 바이센호프, 작은 집에 담긴 국제적 실험
1924년부터 1927년 사이에 설계된 훅 판 홀란트 노동자주택은 약 40가구를 위한 공공주택 계획에서 출발했다. 낮고 길게 이어지는 두 줄의 주택, 둥글게 처리된 끝부분, 수평으로 연결되는 발코니와 벽면은 배 한 척의 선체처럼 단단하면서도 가볍다. 캐나다건축센터가 보존한 도면 기록은 이 사업이 노동계층을 위한 실제 주거계획이었으며 여러 차례 수정된 끝에 두 개의 2층 연립주택군으로 정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192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주거전시회에서는 아우트가 설계한 다섯 채의 연립주택이 완공되었다. 그는 미스 반 데어 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 등과 함께 새로운 주거 유형을 제안했고, 주택 내부에 가구와 수납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제한된 공간을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보여 주었다. 해당 연립주택은 현재의 판코크베크 1–9에 남아 있다.
언젠가 그 집 앞에 선다면 나는 먼저 건물의 정면보다 골목 폭과 현관 앞의 깊이를 확인하고 싶다. 도면에서 합리적으로 보이는 치수도 사람이 서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모든 건축물을 직접 찾아갈 형편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의 그림자와 평면의 치수를 번갈아 보며 그 공간을 짐작한다. 그럴 때 아우트의 건축은 화려한 목적지보다 생활을 견디게 하는 정확한 간격으로 다가온다.
카페 드 위니와 셸 빌딩, 변화는 배신이었는가
1925년 완성된 카페 드 위니의 정면은 아우트의 데 스테일 시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이미지이다. 좁은 대지의 입면 위에 빨강·파랑·노랑과 흰색, 검은 선, 비대칭적으로 배치된 글자가 겹치며 건물의 정면을 하나의 도시 그래픽으로 바꾸었다. 원래 건물은 1940년 로테르담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1986년 건축가 카럴 베버르가 원래 위치와 가까운 마우리츠베크에 입면을 재현한 건물을 완성했다. 따라서 오늘날 마주하는 카페는 아우트가 직접 완성한 원본과 동일한 물질적 건물은 아니다.
반대로 1930년대 후반에 설계를 시작해 전후 완성된 헤이그의 옛 셸 사옥은 대칭적 구성, 장식적 요소, 전통적인 재료 사용으로 인해 초기의 백색 사회주택과 크게 달라 보인다. 당시 많은 근대건축 지지자는 이를 후퇴로 받아들였고, 아우트의 국제적 평판도 흔들렸다. 그러나 아우트 자신은 근대건축이 특정한 외형을 반복하는 양식으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했고, 기능뿐 아니라 기념성이나 인간의 심리적 요구도 건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셸 빌딩을 무조건 옹호하기도, 배신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현장에서는 설계 원칙이 중요하지만 발주자의 요구와 공사비, 법규, 유지관리 조건을 무시한 순수한 원칙은 실제 시설을 세우지 못한다. 그렇다고 현실을 이유로 모든 조형적 긴장을 놓아 버리면 건축은 금세 무거워진다. 아우트의 후기 작업이 불편한 이유는 실패해서가 아니라,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누구나 겪는 타협의 흔적을 너무 솔직하게 보여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론: 야코뷔스 아우트가 남긴 것은 흰색이 아니라 태도이다
야코뷔스 아우트는 데 스테일의 초기 건축가였고, 로테르담의 사회주택을 통해 근대적 표준화와 도시적 구성의 가능성을 실험했으며, 후기에는 초기와 다른 고전적·장식적 언어까지 받아들였다. 그의 궤적은 한 방향으로 곧게 나아간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술의 질서를 건축에 적용하려 했고, 생활의 요구에 부딪혀 그것을 조정했으며, 마침내 자신이 세운 근대건축의 경계까지 다시 의심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의 찬란한 순간은 카페 드 위니의 선명한 색에 있지만, 건축가로서의 진실은 키프후크의 작은 부엌과 반복되는 현관에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판할 지점도 분명하다. 최소주택의 합리성은 거주자의 다양성을 충분히 품지 못할 수 있고, 후기의 기념비적 건축은 초기 사회주택의 긴장감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미학과 기능을 어느 한쪽의 구호로 정리하지 않았다.
도면을 펼치면 선은 언제나 단정하다. 그러나 그 선이 현실에 세워지는 순간 비용과 재료, 사람의 습관과 시간의 마모가 끼어든다. 아우트가 내게 남긴 것은 빨강과 파랑의 조합이 아니라 그 어긋남을 끝까지 설계하려는 태도이다. 좋은 건축은 얼마나 순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얼마나 현실을 견뎌야 하는가. 그 질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야코뷔스 아우트는 왜 데 스테일 건축가로 불리는가?
야코뷔스 아우트는 1917년 데 스테일 운동의 초기 구성원으로 참여했고 테오 판 두스뷔르흐와 협업하며 수평·수직선, 비대칭 구성, 순수한 색채를 건축에 적용했다. 다만 이후에는 건축의 구조와 경제성, 생활 기능을 더 중시하면서 운동의 급진적 이론과 거리를 두었다.
야코뷔스 아우트의 대표적인 사회주택은 무엇인가?
로테르담의 키프후크 주거단지와 훅 판 홀란트 노동자주택이 대표적이다. 두 작품은 작은 평면과 반복 시공을 통해 비용을 줄이면서도 곡면 모서리, 거리 구성, 공동시설을 이용해 단조로움을 완화했다.
키프후크 주거단지의 건축적 특징은 무엇인가?
키프후크는 표준화된 최소주택을 연속적으로 배치하고 곡선형 모서리와 광장, 상점 등으로 도시적 흐름을 만든 단지이다. 저렴한 노동자주택에서도 채광과 위생, 동선, 거리의 표정을 함께 고려했다는 점에서 근대 사회주택의 주요 사례로 평가된다.
카페 드 위니는 현재도 원래 건물로 남아 있는가?
1925년에 완성된 원래 카페 드 위니는 1940년 로테르담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현재 마우리츠베크에 있는 건물은 카럴 베버르가 아우트의 입면을 재현해 1986년에 완성한 것으로, 원본의 디자인을 계승하지만 동일한 건물은 아니다.
야코뷔스 아우트는 후기 건축에서 왜 고전적인 표현을 사용했는가?
아우트는 근대건축이 흰 벽과 평지붕 같은 고정된 외형으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셸 사옥 같은 후기 작품에서는 기능뿐 아니라 기념성, 장식, 인간의 심리적 요구를 수용하려 했지만 이러한 변화는 당시 근대주의 진영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참고문헌
- Ed Taverne, Cor Wagenaar, Martien de Vletter, Dolf Broekhuizen 편, J.J.P. Oud: Poetic Functionalist 1890–1963, Complete Works, NAi Publishers, 2001
- Ed Taverne, Dolf Broekhuizen, J.J.P. Oud's Shell Building: Design and Reception, NAi Publishers, 1995
- Henry-Russell Hitchcock, Philip Johnson, The International Style: Architecture Since 1922, W. W. Norton & Company, 1932
- Paul Overy, De Stijl, Thames & Hudson, 1991
- Museum of Modern Art, De Stijl, 1917–1928, Museum of Modern Art, 1952
- Canadian Centre for Architecture, Hoek van Holland Housing Scheme, Netherlands, 1924–1927, CCA Collection
- Canadian Centre for Architecture, Five Row Houses in the Weissenhofsiedlung, Stuttgart, Germany, 1926–1927, CCA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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