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건축가?2026. 7. 16.by aclstoryji

이탈리아 합리주의를 선언문에서 실제 건물로 옮긴 건축가 "주세페 테라니"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주세페 테라니, 투명한 질서가 감추지 못한 시대의 그림자

정교한 비례와 빛의 건축을 완성했지만, 파시즘의 제도 안에서 작업했던 주세페 테라니의 합리주의를 공간과 구조, 윤리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다.

주세페 테라니(Giuseppe Terragni, 1904–1943)는 이탈리아을(를) 대표하는 합리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주세페 테라니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Casa del Fascio, ComoPhoto by Nicola Quirico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건축 여정 — 고향과 대표작이 자리한 곳
메다 · 이탈리아카사 델 파쇼 · 이탈리아노보코뭄 · 이탈리아산텔리아 유치원 · 이탈리아줄리아니 프리제리오 주택 · 이탈리아

빛이 통과하는 격자 앞에서

사진 속 건물의 정면에는 창과 벽, 기둥과 빈 공간이 바둑판처럼 나뉘어 있다. 그러나 차갑게 닫힌 격자가 아니다. 깊이가 다른 면 사이로 햇빛이 들어가고, 그림자가 움직이면서 정면 전체가 조금씩 다른 표정을 만든다. 주세페 테라니의 카사 델 파쇼를 처음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이 건물이 단순한 흰색 상자가 아니라 빛을 구조처럼 조립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반듯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요하지는 않다.

발전소 현장에서 철골 프레임과 배관 지지대, 점검 통로가 만들어내는 질서를 오래 보다 보면 격자는 장식이 아니라 작동을 위한 약속처럼 느껴진다. 하중이 어디로 흐르는지, 사람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무엇을 열어 두고 무엇을 막아야 하는지가 선과 면에 드러난다. 테라니의 건축에서도 비슷한 긴장이 보인다. 다만 그 질서가 순수한 기능만을 향하지는 않는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외피 뒤에는 정치적 권력과 재현의 욕망이 함께 서 있다.

NovocomumPhoto by Pinotto992 / CC BY-SA 3.0 it / Wikimedia Commons

메다에서 코모로, 짧고 밀도 높았던 생애

주세페 테라니는 1904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메다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코모로 옮겨 성장했다. 밀라노 공과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1926년 졸업했으며, 이듬해 형 아틸리오 테라니와 코모에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그는 1926년 결성된 그루포 7의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해 역사주의적 장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탈리아 건축을 주장했다.

그의 실질적인 활동 기간은 길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군 복무를 했고 동부전선에 파견되었다가 귀환한 뒤, 신체적·정신적으로 크게 쇠약해진 상태에서 1943년 코모에서 서른아홉 살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구체적 의학적 원인은 자료에 따라 서술의 차이가 있으므로 단순한 전쟁 영웅담이나 비극적 신화로 고정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분명한 것은 그가 약 1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코모를 중심으로 놀라울 만큼 응축된 작업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Asilo Sant'EliaPhoto by Agnese Cett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주세페 테라니와 이탈리아 합리주의의 불편한 출발점

이탈리아 합리주의는 기능과 구조, 기하학적 비례를 중시했지만 독일이나 프랑스의 근대건축을 그대로 복제하려 한 운동은 아니었다. 그루포 7은 산업시대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이탈리아 고전건축의 질서와 비례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테라니의 건물에서 정육면체, 직교 격자, 반복되는 기둥이 보이는 동시에 정면의 균형과 중심성, 비례에 대한 집요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체제와 분리해서 읽을 수 없다. 테라니는 파시스트당과 관련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카사 델 파쇼는 지역 파시스트당 본부로 건설되었다. 그의 건축이 파시즘의 과장된 고전주의와 다른 투명하고 현대적인 모습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정치적 책임을 지워 주지는 않는다. 반대로 건축가의 모든 형식적 성취를 정치 선전의 부산물로만 축소하는 것 역시 충분한 해석은 아니다. 아름다움과 권력이 같은 건물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표작에서 읽는 공간과 재료의 실험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코모에 지어진 노보코뭄은 테라니의 첫 주요 건축으로 평가되는 공동주택이다.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고 수평 창과 발코니를 강조한 외관 때문에 당시에는 기존 도시 경관과 충돌한다는 논란을 불러왔다. 전통적인 외관으로 허가받은 뒤 실제 공사에서 현대적인 형태가 드러났다는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건물에서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외형만이 아니다. 철근콘크리트와 벽돌 등 서로 다른 구조·구축 방식이 혼재하면서, 이탈리아 건설 현실과 근대적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 준다.

1932년부터 1936년까지 설계·건설된 코모의 카사 델 파쇼는 한 변의 길이가 건물 높이의 약 두 배가 되는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을 바탕으로 한다. 중앙의 아트리움 주변에 사무공간과 동선이 조직되고, 네 입면은 동일한 격자를 공유하면서도 개구부와 벽의 비율을 다르게 구성한다. 흰 대리석으로 마감된 외벽, 유리블록, 유리와 금속, 철근콘크리트 골조가 서로 다른 투명도와 무게를 만든다. 외부에서 내부 활동이 일부 드러나는 구성은 열린 조직을 상징하려 했지만, 실제로 그 공간을 점유한 것은 독재 정권의 지역 조직이었다.

1936년에서 1937년 사이 완성된 산텔리아 유치원에서는 정치적 기념성보다 어린이의 몸과 일상이 더 앞에 놓인다. 낮은 건물은 정원과 중정을 감싸고, 넓은 유리면과 차양, 테라스가 실내외를 부드럽게 연결한다. 햇빛과 환기, 놀이 공간을 교육환경의 일부로 다룬 방식은 지금 보아도 설득력이 있다.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진행된 줄리아니 프리제리오 주택에서는 돌출된 발코니와 이동된 벽면, 분절된 구조 프레임을 통해 규칙과 어긋남이 동시에 나타난다. 단정한 상자 안에서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면의 합리성과 현장의 현실 사이

플랜트 설비를 다루는 현장에서는 도면의 선이 실제 공간에서 얼마나 무겁게 작동하는지 자주 확인하게 된다. 점검 공간이 몇 센티미터 부족하면 작업자의 몸이 비틀리고, 배관과 케이블의 간섭 하나가 유지관리 전체를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테라니의 평면을 볼 때 먼저 사람이 어떻게 들어가고, 방향을 바꾸고, 빛을 만나며, 내부와 외부를 인식하는지 살핀다. 그의 도면에는 구조와 동선, 입면의 비례를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는 집요함이 있다.

동시에 모든 합리성이 곧 편안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교한 모듈은 때로 사람보다 구성 원리를 우선하고, 넓은 유리면과 개방된 공간은 기후 대응과 유지관리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남긴다. 재료의 투명성과 흰색 표면도 시간이 지나면 오염, 변색, 열 성능, 보수 방식이라는 구체적인 질문을 만난다. 나는 이 지점에서 테라니를 더 흥미롭게 느낀다. 그의 건축은 합리주의가 완성된 정답이라기보다, 추상적인 질서를 실제 도시와 재료 속에 밀어 넣으며 생긴 마찰의 기록에 가깝다.

결론: 맑은 건축을 바라보는 흐린 마음

주세페 테라니는 짧은 생애 동안 이탈리아 합리주의를 선언문에서 실제 건물로 옮긴 건축가였다. 노보코뭄에서는 새로운 주거 형식을 실험했고, 카사 델 파쇼에서는 구조와 비례, 빛과 정치적 상징을 결합했으며, 산텔리아 유치원에서는 자연과 어린이의 일상을 공간의 중심에 두었다. 줄리아니 프리제리오 주택에서는 초기의 명료한 격자를 더 복잡하고 불안정한 구성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백색 상자도, 기능만을 따르는 기계도 아니었다.

언젠가 코모에 갈 수 있다면 나는 먼저 카사 델 파쇼의 정면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 보고 싶다. 사진에서는 반듯해 보이는 격자가 실제 햇빛 아래에서도 같은 질서를 유지하는지, 그 투명한 벽 앞에서 파시즘이라는 역사의 무게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확인하고 싶다. 경제적인 현실을 생각하면 그 여행은 아직 지도 위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테라니의 건축은 내게 한 가지 물음을 남긴다. 정확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능력만으로 건축가는 자신의 시대 앞에서 충분히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주세페 테라니는 어떤 건축가인가?

주세페 테라니는 1904년 이탈리아 메다에서 태어나 코모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탈리아 합리주의 건축가이다. 그루포 7의 창립 구성원으로서 근대적 기술과 기하학적 질서, 이탈리아 고전건축의 비례를 결합하려 했다.

주세페 테라니의 대표 건축물은 무엇인가?

대표작으로 코모의 카사 델 파쇼, 노보코뭄, 산텔리아 유치원, 줄리아니 프리제리오 주택이 있다. 실현되지 않은 작품 가운데서는 단테의 신곡을 공간으로 번역하려 한 단테움 계획이 특히 널리 연구된다.

카사 델 파쇼가 이탈리아 합리주의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카사 델 파쇼는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 철근콘크리트 구조, 서로 다르게 구성된 네 입면과 중앙 아트리움을 하나의 비례 체계로 통합했다. 구조적 명료성과 추상적 구성이 뛰어나지만, 파시스트당 본부였다는 정치적 배경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주세페 테라니와 파시즘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테라니는 파시스트 체제 아래에서 활동했고 당 관련 건축을 설계했으므로 정치적 맥락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건축 언어가 체제의 전형적인 기념비적 고전주의와 달랐다는 점을 근거로 책임을 면제하거나, 반대로 작품의 공간적 성취를 모두 부정하는 해석은 모두 경계할 필요가 있다.

주세페 테라니의 건축을 직접 보려면 어느 도시로 가야 하는가?

주요 작품 대부분이 있는 이탈리아 북부의 코모가 핵심 도시이다. 카사 델 파쇼와 노보코뭄, 산텔리아 유치원, 줄리아니 프리제리오 주택이 비교적 가까운 범위에 있어 이탈리아 합리주의 건축 답사 동선을 구성하기 좋다.

참고문헌

  1. Peter Eisenman, Giuseppe Terragni: Transformations, Decompositions, Critiques, The Monacelli Press, 2003
  2. Richard A. Etlin, Modernism in Italian Architecture, 1890–1940, MIT Press, 1991
  3. Kenneth Frampton, 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 Thames & Hudson, 1980
  4. Thomas L. Schumacher, The Danteum: Architecture, Poetics, and Politics under Italian Fascism,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04
  5. Bruno Zevi, Giuseppe Terragni, Zanichelli,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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