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리시츠키, 건축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을 때 공간을 움직인 사람
회화와 건축, 전시와 인쇄물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엘 리시츠키는 건물보다 먼저 인간의 시선과 움직임을 설계했다.
엘 리시츠키(El Lissitzky, 1890–1941)는 러시아을(를) 대표하는 구성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엘 리시츠키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El Lissitzky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도면 속 구조물이 먼저 나를 바라볼 때
발전소 현장에서 철골 구조를 올려다볼 때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접합부에 머문다. 거대한 설비의 인상보다 어디에서 하중을 받고, 어떤 부재가 힘을 넘기며, 사람이 어느 통로로 접근해야 하는지가 먼저 보인다. 공간은 겉모습보다 관계로 작동한다. 엘 리시츠키의 도면과 사진을 처음 찬찬히 들여다봤을 때도 비슷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구조물인데, 선과 면이 서로 밀고 당기며 이미 하나의 공간을 가동하고 있었다.
엘 리시츠키의 작업 앞에서는 그림을 보고 있는지, 설계도를 읽고 있는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기하학적 형상은 벽이 되었다가 바닥처럼 기울고, 검은 막대는 보나 기둥처럼 화면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불확실함이 조금 불편하면서도 부러웠다. 현장에서는 모든 선에 명확한 용도와 치수가 요구되지만, 그의 선은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공간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건물을 완공한 건축가가 아니다. 오히려 건축이 건물이 되기 전, 하나의 사고와 이미지로 존재하는 순간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그래서 엘 리시츠키를 읽는 일은 작품 목록을 정리하는 것보다 그가 평면과 공간 사이에 만들어 놓은 긴장 속으로 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포치노크에서 비텝스크로, 혁명기의 언어를 찾다
엘 리시츠키는 1890년 러시아 제국 스몰렌스크주 포치노크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라자르 마르코비치 리시츠키였다. 그는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뒤 러시아로 돌아왔다. 초기에는 이디시어 아동 도서를 디자인하며 유대 문화의 시각적 표현에 관심을 보였지만, 러시아혁명 이후 그의 작업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보편적 조형 언어를 찾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1919년 그는 마르크 샤갈의 초청으로 비텝스크 인민예술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만났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순수한 기하학과 색채를 추구했다. 엘 리시츠키는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아들였지만 그대로 머물지는 않았다. 그는 추상적인 형상을 실제 생활과 건축, 인쇄와 전시의 영역으로 옮기려 했다.
이 지점에서 그를 구성주의자로만 단순하게 분류하면 중요한 결이 사라진다. 엘 리시츠키는 절대주의와 구성주의 사이를 이동했고, 예술가와 건축가, 선전가와 전시 디자이너라는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의 작업에는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과 국가 이념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함께 존재한다. 실험의 자유만큼 정치적 도구가 될 위험도 품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활동했던 시대의 진실이다.
Photo by El Lissitzky / Stedelijk Van Abbemuseum / CC0 / Wikimedia Commons엘 리시츠키의 프로운, 그림이 방이 되기까지
엘 리시츠키가 1919년 무렵부터 전개한 ‘프로운’은 그의 공간 개념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PROUN이라는 명칭의 정확한 어원과 번역에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새로운 것을 긍정하는 프로젝트’라는 의미와 연결해 설명된다. 그는 프로운을 회화에서 건축으로 넘어가는 중간 정거장으로 보았다. 화면 속 사각형과 축, 부유하는 입체는 특정한 위아래를 거부하며 관람자의 시선을 회전시킨다.
1923년 베를린 대미술전에 설치된 ‘프로운 룸’은 이 실험이 실제 방으로 확장된 사례였다. 엘 리시츠키는 작은 전시실의 벽과 모서리, 천장 가까운 부분까지 하나의 구성으로 다뤘다. 관람자는 정면에 걸린 그림을 조용히 감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 안을 움직이며 계속 달라지는 관계를 경험하는 참여자가 되었다. 원래 설치물은 남아 있지 않으며 오늘날 알려진 공간은 사진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재구성이다.
실내건축을 공부하며 평면도와 입면도를 따로 그렸지만, 실제 공간에서는 벽과 바닥, 빛과 동선이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프로운 룸은 바로 그 통합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다만 그 공간이 일상생활을 담는 건축은 아니었다. 피난과 유지관리, 구조적 내구성을 검토한 방이라기보다 지각을 흔들기 위한 전시 장치였다. 강렬하지만, 현실 건축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Photo by Dietmar Rabich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모스크바 상공에 걸린 수평 마천루
엘 리시츠키의 건축적 상상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계획은 1920년대 중반에 구상한 ‘볼켄뷔겔’이다. 독일어 명칭은 문자 그대로 번역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구름걸이’ 또는 ‘수평 마천루’라고 불린다. 그는 모스크바 순환도로의 주요 교차점 여덟 곳에 가느다란 수직 지지체를 세우고, 그 위에 긴 업무 공간을 수평으로 얹는 방안을 제안했다.
기존 마천루가 토지를 점유하며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라면, 볼켄뷔겔은 교차로 위의 공중을 사용하려 했다. 수직 지지부에는 엘리베이터와 계단, 교통시설을 배치하고 상부에는 사무 공간을 두는 구상이었다. 도시의 이동 체계와 건축을 결합하려 했다는 점은 대담하다. 그러나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으며, 구조 계산과 시공성, 화재 안전과 피난, 기초가 받는 집중 하중 같은 문제는 계획 이미지에서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다.
발전 설비를 다루는 입장에서 보면 얇은 지지체 위에 긴 수평 매스를 올린 모습부터 걱정이 앞선다. 풍하중과 진동, 비상 접근로가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 그럼에도 이 계획을 허황된 그림으로만 넘기기는 어렵다. 엘 리시츠키가 제안한 것은 특이한 형태 하나가 아니라, 지가와 교통, 공중 공간을 함께 다루는 도시적 사고였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이 남지만 질문의 크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전시는 벽에 거는 일이 아니라 관람자를 움직이는 일
엘 리시츠키는 1920년대 후반 전시 디자인에서 자신의 공간 실험을 더욱 구체화했다. 1927년 독일 하노버의 프로빈치알뮤지엄에 설치된 ‘추상 캐비닛’은 그 대표 사례다. 그는 벽면에 세로 줄무늬 구조와 움직이는 패널을 도입해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배경과 작품의 관계가 달라지도록 만들었다. 전시실은 작품을 담는 중립적인 상자가 아니라 감상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기계가 되었다.
이 공간은 나치 정권 아래에서 해체되었고, 현재 하노버 슈프렝겔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후대에 재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방문 경험을 곧바로 1927년의 원형과 동일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관람자의 이동과 선택을 전시의 일부로 만든 발상은 현대 미술관과 박람회, 상업 전시 공간에서 익숙하게 발견된다.
찬양할 부분은 분명하다. 엘 리시츠키는 그래픽과 건축, 정보 전달과 신체 경험을 하나의 설계 문제로 묶었다. 동시에 비판적으로 볼 부분도 있다. 그의 전시 작업 가운데 일부는 소비에트 국가의 산업 성과와 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시선을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기술은 교육과 소통에 쓰일 수도 있지만, 권력이 원하는 메시지만 보이게 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공간은 결코 순진하지 않다.
결론: 엘 리시츠키가 남긴 것은 건물보다 하나의 질문이다
엘 리시츠키는 1941년 모스크바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건축 유산은 완공된 건물의 수로 평가하기 어렵다. 프로운은 평면을 공간적 사고로 전환했고, 프로운 룸과 추상 캐비닛은 관람자의 움직임을 전시 설계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볼켄뷔겔은 지어지지 않았지만 건축과 도시 기반시설을 결합하는 새로운 상상력을 드러냈다.
그의 작업을 무조건 현실을 앞선 예언으로 찬양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많은 계획이 시공과 안전의 검증을 통과하지 않았고, 일부 작업은 소비에트 선전 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지우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건축의 역사는 완공된 구조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종이에 남은 실패와 미완의 제안도 다음 설계의 가능 범위를 넓힌다.
나는 아직 모스크바의 교차로에서 볼켄뷔겔이 놓였을 자리를 직접 바라본 적이 없다. 경제적인 형편을 생각하면 가까운 시일 안에 하노버의 추상 캐비닛을 찾아가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언젠가 그 공간 앞에 선다면 화려한 감탄보다 먼저 한 가지를 묻고 싶다. 지금 내가 안전과 효율이라는 익숙한 기준으로 지키고 있는 공간은 충분히 좋은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두려워한 채 그저 견고하게만 남아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엘 리시츠키는 건축가인가 그래픽 디자이너인가?
엘 리시츠키는 건축 교육을 받은 예술가이자 건축가, 그래픽 디자이너, 전시 디자이너였다. 한 분야의 직함으로 한정하기보다 회화와 인쇄, 공간 설계를 연결한 다분야 창작자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엘 리시츠키의 프로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로운은 엘 리시츠키가 1919년 무렵부터 전개한 기하학적 작업군이다. 명칭의 정확한 해석에는 논의가 있지만, 그는 이를 회화에서 건축으로 이동하는 중간 단계이자 새로운 공간을 시험하는 방법으로 설명했다.
엘 리시츠키의 수평 마천루 볼켄뷔겔은 실제로 건설되었나?
볼켄뷔겔은 모스크바의 주요 교차점 위에 계획된 수평형 고층 건축이지만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도면과 모형, 사진 합성으로 남은 미실현 계획이며 도시 교통과 공중 공간을 결합한 발상으로 건축사에서 다뤄진다.
엘 리시츠키의 프로운 룸 원본을 지금 볼 수 있나?
1923년 베를린에 설치된 프로운 룸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미술관에서 소개되는 프로운 룸은 사진과 관련 자료를 토대로 후대에 제작한 재구성물이므로 원본과 재구성본을 구분해야 한다.
엘 리시츠키가 현대 전시 디자인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엘 리시츠키는 관람자를 고정된 감상자가 아니라 공간을 이동하며 전시에 참여하는 존재로 보았다. 움직이는 패널과 변화하는 배경, 벽 전체를 이용한 구성은 현대 미술관의 참여형 전시와 공간 브랜딩을 이해하는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참고문헌
- Sophie Lissitzky-Küppers, El Lissitzky: Life, Letters, Texts, Thames & Hudson, 1968
- Christina Lodder, Russian Constructivism, Yale University Press, 1983
- Richard Anderson, Wolkenbügel: El Lissitzky as Architect, MIT Press, 2024
- Peter Nisbet, El Lissitzky, 1890–1941: Catalogue for an Exhibition of Selected Works from North American Collections, Harvard University Art Museums, 1987
- Margarita Tupitsyn, El Lissitzky: Beyond the Abstract Cabinet, Yale University Press, 1999
- Maria Gough, The Artist as Producer: Russian Constructivism in Revolu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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