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건축가?2026. 6. 28.by aclstoryji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하는가, 거슬러야 하는가. 작업의 탁월함은 작가의 결함을 얼마나 가릴 수 있는가의 질문을 남긴 건축가 "필립 존슨"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필립 존슨 — 유리 상자에서 시작해 양식을 갈아탄 건축계의 권력자

국제주의 양식을 미국에 소개한 비평가이자, 자신이 세운 규칙을 스스로 깨고 포스트모던으로 건너간 건축가의 모순적 궤적.

필립 존슨(Philip Johnson, 1906–2005)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국제주의·포스트모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필립 존슨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Glass House, New CanaanPhoto by Carol M. Highsmith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건축 여정 — 고향과 대표작이 자리한 곳
태평양대서양인도양북극해 N S E W 클리블랜드 · 미국글래스 하우스 · 미국시그램 빌딩 · 미국AT&T 빌딩 (550 매디슨 애비뉴) · 미국크리스털 캐시드럴 · 미국 고향대표작

비평가에서 건축가로 — 필립 존슨의 두 얼굴

필립 존슨(Philip Johnson, 1906–2005)은 한 사람의 이력으로 묶기 어려운 인물이다. 1906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건축을 직접 짓기 전에 먼저 '소개하는 사람'으로 이름을 알렸다. 1930년대 초 뉴욕 현대미술관(MoMA) 건축부의 초대 책임자가 되어, 1932년 헨리 러셀 히치콕과 함께 기획한 전시와 저서 '국제주의 양식(The International Style)'으로 유럽 모더니즘을 미국 대중에게 전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본격적으로 건축을 공부한 시점이다. 존슨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 들어가 1943년 건축 학위를 받았다. 즉 그는 건축의 역사와 담론을 먼저 장악한 뒤, 비교적 늦게 설계자의 자리로 옮겨간 사람이었다. 발전소 현장에서 설비의 흐름을 도면으로 먼저 익히고 나서 실제 배관 앞에 서는 순서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이론과 권력을 먼저 쥔 건축가, 이것이 필립 존슨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Seagram Building, New YorkPhoto by Ludwig Mies van der Rohe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글래스 하우스 — 투명함이라는 선언

필립 존슨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건물은 그가 자신을 위해 지은 글래스 하우스(Glass House, 1949, 코네티컷주 뉴케이넌)다. 네 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단층 구조로, 내부에는 벽돌 실린더(욕실)만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아 있고 나머지 공간은 낮은 가구로 느슨하게 구획된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에서 받은 영향을 존슨 스스로도 부정하지 않았다.

이 집은 거주의 편의보다 하나의 미학적 명제를 위해 지어진 건물에 가깝다. 사방이 유리이니 단열과 일사 부담은 클 수밖에 없고, 사생활은 부지 전체를 사유지로 둘러야만 확보된다. 실내건축을 공부한 입장에서 보면, 글래스 하우스는 '살기 위한 집'이라기보다 '보여주기 위한 공간'의 극단적 사례다. 그럼에도 이 투명한 상자가 20세기 주거 건축의 상징이 된 이유는, 구조와 재료를 극도로 단순화해 공간 그 자체를 전면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존슨은 글래스 하우스가 있는 부지에 벽돌집, 미술관, 조각 전시관 등 여러 별동을 차례로 지었다. 한 채의 집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자기 양식의 변천을 기록한 야외 실험장에 가깝다. 그는 이 부지 전체를 국가 사적 보존 단체에 기증했고, 현재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AT&T Building (550 Madison Avenue), New YorkPhoto by roryrory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시그램 빌딩과 국제주의 양식의 절정

필립 존슨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업이 뉴욕 파크 애비뉴의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 1958)이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그의 스승 미스 반 데어 로에이며, 존슨은 공동 작업자로서 현장 건축가 역할과 내부 인테리어(포 시즌스 레스토랑 등)를 맡았다. 미스가 뉴욕주 건축사 면허 문제로 자리를 비운 동안 시공을 책임진 것도 존슨이었다.

청동빛 강철과 유리로 마감된 이 39층 타워는 거리에서 한 발 물러나 광장(플라자)을 비워 둔 배치로 유명하다. 건물이 땅을 다 채우지 않고 공공 공간을 내어주는 이 구성은 이후 도시 마천루의 표준이 되었다. 기능과 구조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미스의 철학이 가장 세련된 형태로 구현된 사례이며, 국제주의 양식이 미국 기업 건축의 얼굴로 자리 잡는 결정적 계기였다.

다만 시그램 빌딩의 영광은 본질적으로 미스의 것이다. 존슨의 공헌은 분명하지만, 이 건물을 그의 대표작으로만 소개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존슨 자신의 독자적 목소리는 오히려 그가 국제주의 양식을 버리기 시작했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Crystal Cathedral, Garden GrovePhoto by Giorgio Galeotti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AT&T 빌딩 — 스스로 세운 규칙을 깨다

1984년 완공된 뉴욕의 AT&T 빌딩(현재 550 매디슨 애비뉴)은 필립 존슨의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다. 존 버지(John Burgee)와의 협업으로 지어진 이 마천루는 꼭대기에 18세기 치펜데일 가구의 갈라진 박공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얹었다. 장식을 죄악시하던 모더니즘의 한복판에서, 한때 국제주의 양식을 미국에 전파했던 바로 그 사람이 역사적 모티프를 마천루 정수리에 올린 것이다.

이 건물은 포스트모던 건축의 가장 유명한 상징이 되었다. 로버트 벤투리나 마이클 그레이브스가 먼저 더 작은 규모의 포스트모던 작업을 선보였지만, 맨해튼 한복판이라는 위치와 규모, 도발성이 AT&T 빌딩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정의를 도왔던 양식을 노년에 스스로 뒤집은 이 전환은, 존슨의 지적 유연성으로 칭송되기도 하고 일관된 신념의 부재로 비판받기도 한다.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의 크리스털 캐시드럴(Crystal Cathedral, 1980) 역시 존슨과 버지의 협업이다. 1만 개가 넘는 유리판으로 둘러싼 거대한 별 모양 교회는 빛으로만 채워진 극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다만 유리 외피가 초래한 열기와 눈부심, 음향 문제는 두고두고 지적되었고, 화려한 외관과 실사용 환경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권력과 그늘 — 존슨을 둘러싼 비판

필립 존슨을 다룰 때 피할 수 없는 주제가 그의 1930년대 정치 행적이다. 그는 MoMA를 떠나 저널리즘과 급진 정치에 몸담았던 시기에 나치와 파시즘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고, 반유대주의적 언사를 남겼다. 본인은 후일 이를 '어리석은 견해'였다며 거리를 두려 했지만, 이 과오는 평생 그를 따라다닌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 건축가의 작업과 인간적 결함을 어떻게 분리해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존슨만큼 무겁게 던지는 인물도 드물다.

건축적으로도 그는 '양식의 변절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제주의 양식, 포스트모던, 후기의 해체주의적 실험에 이르기까지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외피를 바꿨다. 누군가는 이를 끊임없는 자기 갱신으로, 다른 누군가는 깊이 없는 형식주의로 평가한다. 그가 MoMA의 큐레이터이자 후원자로서 젊은 건축가들의 데뷔를 좌우한 '권력자'였다는 사실은, 그의 영향력과 그늘을 동시에 설명한다.

그럼에도 부정하기 어려운 진실이 있다. 존슨은 1978년 AIA 금메달을, 1979년 제1회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같은 후대 건축가들을 1988년 MoMA 전시를 통해 조명한 것도 그였다. 작업의 일관성과 별개로, 20세기 미국 건축 담론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결론 — 필립 존슨이 남긴 질문

필립 존슨은 명료한 대표작 하나로 요약되는 건축가가 아니다. 그는 양식을 정의하고, 그 양식을 미국에 심고, 다시 그것을 스스로 뒤엎은 사람이다. 글래스 하우스의 투명한 절제, 시그램 빌딩의 세련된 협업, AT&T 빌딩의 도발적 전환은 한 사람의 작업이라기엔 너무 이질적이지만, 바로 그 이질성이 그의 정체성이다.

현장에서 설비와 구조를 다루는 눈으로 보면, 존슨의 건물들은 종종 기능보다 선언을 앞세운다. 유리 상자의 단열 부담이든, 유리 교회의 눈부심이든, 그의 작업에는 실사용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나의 미학적 명제를 관철하려는 태도가 배어 있다. 이를 한계로 볼지, 건축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야심으로 볼지는 보는 이의 몫이다.

결국 필립 존슨이 남긴 것은 완결된 양식이 아니라 질문이다. 건축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하는가, 거슬러야 하는가. 작업의 탁월함은 작가의 결함을 얼마나 가릴 수 있는가. 한 세기를 가로지른 그의 궤적은 그 질문들을 지금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필립 존슨은 어느 나라 건축가인가?

필립 존슨은 미국 국적의 건축가이자 비평가다. 1906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2005년 코네티컷주 뉴케이넌의 글래스 하우스에서 98세로 사망했다. 국제주의 양식과 포스트모던 건축 양쪽 모두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필립 존슨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자신의 주거이자 모더니즘의 상징인 글래스 하우스(1949), 미스와 협업한 시그램 빌딩(1958), 포스트모던의 아이콘 AT&T 빌딩(1984), 가든그로브의 크리스털 캐시드럴(1980)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각 건물이 서로 다른 양식을 대표한다는 점이 존슨 작업의 특징이다.

필립 존슨이 첫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이유는 무엇인가?

프리츠커 건축상은 1979년 제정되었고, 필립 존슨이 그 첫 번째 수상자다. MoMA 큐레이터로서 모더니즘을 미국에 소개하고 직접 영향력 있는 건물을 설계한 공로가 인정되었다. 다만 첫 수상자라는 사실이 그가 당대 최고의 설계자였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필립 존슨의 나치 동조 논란은 무엇인가?

존슨은 1930년대에 MoMA를 떠나 저널리즘과 급진 정치에 몸담으며 나치와 파시즘에 동조하는 발언, 반유대주의적 언사를 남겼다. 이후 본인은 '어리석은 견해'였다며 거리를 두려 했지만, 이 과오는 평생 그를 따라다닌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 건축적 업적과 별개로 반드시 함께 언급되는 사안이다.

글래스 하우스는 실제로 거주가 가능한 집인가?

글래스 하우스는 존슨이 실제로 사용한 주거지만, 네 면이 유리라 단열과 일사, 사생활 측면의 부담이 크다. 존슨은 부지 전체를 사유지로 두고 별도의 벽돌집 등 여러 별동을 함께 지어 일상 기능을 보완했다. 편의를 위한 집이라기보다 미학적 명제를 구현한 공간에 가깝다.

참고문헌

  1. Hitchcock, Henry-Russell, and Philip Johnson, The International Style: Architecture Since 1922, W. W. Norton, 1932
  2. Schulze, Franz, Philip Johnson: Life and Work, Alfred A. Knopf, 1994
  3. Lamster, Mark, The Man in the Glass House: Philip Johnson, Architect of the Modern Century, Little, Brown and Company, 2018
  4. Lewis, Hilary, and John O'Connor, Philip Johnson: The Architect in His Own Words, Rizzoli, 1994
  5. Johnson, Philip, Mies van der Rohe, Museum of Modern Art,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