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나르 아스플룬드, 고전과 근대 사이에서 빛을 설계하다
스웨덴이 낳은 가장 조용한 혁명가는 도서관 열람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 하나로 두 시대를 연결했다.
군나르 아스플룬드(Gunnar Asplund, 1885–1940)는 스웨덴을(를) 대표하는 북유럽 고전·근대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Photo by Arild Våge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고요한 혁명가의 시작
군나르 아스플룬드(Erik Gunnar Asplund, 1885–1940)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55세의 짧은 생을 마쳤지만, 그가 남긴 건축물들은 북유럽 건축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왕립예술원과 왕립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초기에는 스웨덴 특유의 신고전주의 양식인 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를 따랐으며, 절제된 고전적 비례와 재료의 솔직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는 이후 기능주의 모더니즘으로 전환했으나, 그 과정에서 냉혹한 이론가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척도, 빛의 방향, 재료의 질감을 끝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그의 태도는 20세기 중반 스칸디나비아 건축이 국제적 기능주의의 거친 면모를 완화하고 따뜻한 개성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짧은 생애와 비교해 그의 유산이 유달리 묵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Photo by Alan Walker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빛이 떨어지는 원통 — 스톡홀름 공공도서관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건물은 1928년 완공된 스톡홀름 공공도서관(Stockholms stadsbibliotek)이다. 정육면체 기단 위에 원통형 열람실을 올려놓은 구성은 판테온 같은 고전 건축의 기하학적 전통을 참조하면서도, 외장 장식 대신 벽면의 순수한 매스와 개구부만으로 공간감을 구축한다. 열람실 상부의 원형 창에서 흘러내리는 자연광이 서가 전체를 감싸는 장면은 오늘날 사진으로만 보아도 즉각적인 공간적 압도감을 전한다.
실내건축의 눈으로 이 도서관을 살피면, 입구에서 계단을 오르는 순간 원통 내부가 단번에 열리는 공간 시퀀스가 두드러진다. 이 압축과 해방의 경험은 고전 건축이 오래전부터 써온 방식이지만, 아스플룬드는 그것을 어떤 역사 양식도 명시적으로 인용하지 않은 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해냈다. 발전 설비나 대형 구조물을 다루다 보면 원통형 구조체가 하중 분산과 개구부 배치 면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데, 그 관점에서 보면 이 열람실 벽체의 선택이 단순한 형태 미학이 아님을 더 분명하게 읽게 된다.
Photo by Mark Stevenson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숲과 죽음의 건축 — 스코그스키르코고르덴
스코그스키르코고르덴(Skogskyrkogården, 숲의 공동묘지)은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건축가 시구르드 레베렌츠(Sigurd Lewerentz)가 1915년 공모에 당선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자연 지형을 대규모로 변형하지 않고 기존 숲의 능선과 공터를 최대한 살린 이 묘지 단지는 건축과 조경, 기념성이 이례적으로 섬세하게 교차하는 사례로 인정받아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단지 내 스코그스크레마토리에트(Skogskrematoriet, 숲의 화장터)는 아스플룬드가 단독으로 설계해 1940년, 그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에 문을 열었다. 대기 공간, 예배당, 화장 시설을 순서대로 배치한 이 건물은 기능적 동선 자체가 의례의 흐름이 되도록 구성됐다. 직접 발을 딛지 못한 채 도면과 기록으로만 접한 공간임에도, 유족이 걸어가는 경로가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읽으면 이 건물이 얼마나 치밀하게 인간의 심리를 수용하는지 가늠된다.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1930년 박람회
1930년은 군나르 아스플룬드 개인에게도, 스웨덴 건축 전체에도 하나의 분기점으로 기록된다. 그해 스톡홀름 국제박람회(Stockholmsutställningen 1930)의 총괄 건축가를 맡은 그는 유리와 철골, 경쾌한 캔틸레버 구조가 주도하는 전시 파빌리온들을 설계했다. 박람회 폐막 직후 건물 대부분이 철거됐으나, 남겨진 사진들은 스웨덴 건축이 기능주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역사적 순간으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같은 시기 아스플룬드는 동료 건축가들과 함께 기능주의 선언 성격의 소책자 acceptera(1931)를 공동 집필했다. 현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조건을 수용하고 그에 맞는 건축 언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이 문건은 스웨덴 기능주의 운동의 이론적 출발점이 됐다. 그러나 아스플룬드는 이 전환 이후에도 예테보리 법원 증축(1937년경)에서 보듯, 새 건물이 역사적 맥락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끝내 놓지 않았다.
재료와 빛의 언어 — 아스플룬드 공간의 핵심
아스플룬드의 건축이 시대적 양식 논쟁을 초월해 오래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는 재료와 인간 척도에 대한 집요한 감각에 있다. 그는 벽돌, 석재, 회반죽, 목재를 각 재료의 물성이 드러나도록 배치했고, 세부 요소들이 전체 비례 체계 안에서 하나로 묶이도록 설계를 조율했다. 장식이 구조 위에 덧씌워지는 방식이 아니라, 디테일이 구조적 논리에서 자연스럽게 출발하는 방식이다.
빛을 다루는 방식도 그의 일관된 특징이다. 자연광의 방향과 강도가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도록 개구부를 배치함으로써, 낮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표정이 조용히 달라지게 했다. 실내건축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익히는 원칙 중 하나가 자연광 계획이지만, 실무 현장에서 그 원칙이 완전한 형태로 구현된 공간을 만나기는 생각보다 드물다. 아스플룬드의 도서관이나 화장터 내부 사진은, 그 원칙이 한 치의 낭비 없이 구현된 경우가 어떤 모습인지를 비로소 실감하게 한다.
결론 — 군나르 아스플룬드가 남긴 공간의 무게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가 설계한 공간들은 스웨덴을 넘어 20세기 건축이 인간적 온도를 어떻게 유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참조점이 됐다. 고전에서 출발해 기능주의로 건너간 그의 궤적은 단절이 아니라 누적이었고, 그 연속성이 그의 건물들을 지금도 낡지 않게 한다. 스톡홀름 공공도서관에 들어서는 사람은 1928년이라는 연도를 의식하지 않아도 그 공간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아스플룬드는 공간이 단지 기능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시간을 수용하는 구조물이 될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건축이 시각적 이미지 경쟁에 치우치기 쉬운 지금, 빛과 재료와 척도만으로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그의 방법론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군나르 아스플룬드를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가 고전주의자도 모더니스트도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공간 그 자체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군나르 아스플룬드는 어떤 건축가인가?
스웨덴 출신 건축가로, 1885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940년 같은 도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초기에는 북유럽 고전주의를 따랐고 이후 기능주의 모더니즘으로 전환하며 스톡홀름 공공도서관, 숲의 화장터 등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는 건물들을 남겼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스코그스키르코고르덴은 그의 대표 유산 중 하나다.
스톡홀름 공공도서관의 원통 열람실은 어떻게 설계됐나?
정육면체 기단 위에 원통형 열람실을 얹은 구성으로, 상부 원형 개구부를 통해 자연광이 서가 전체를 감싸도록 설계됐다. 판테온 등 고전 건축의 기하학적 전통을 참조하면서도 외장 장식을 최소화해 벽면의 순수한 매스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1928년 완공됐으며 오늘날에도 스톡홀름 시민이 실제로 이용하는 공공 도서관이다.
스코그스키르코고르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는 무엇인가?
스웨덴 스톡홀름 남부에 위치한 이 묘지는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시구르드 레베렌츠가 1915년 공모에 당선해 수십 년에 걸쳐 조성한 장소다. 자연 지형을 거의 그대로 살리면서 건축, 조경, 기념성을 통합한 독보적인 사례로 인정받아 1994년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죽음을 자연 속에 녹이는 설계 철학이 현대 묘지 건축에 끼친 영향이 등재의 핵심 근거 중 하나다.
아스플룬드가 고전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전환한 계기는 무엇인가?
1930년 스톡홀름 국제박람회의 총괄 건축가를 맡은 것이 결정적 전환점으로 꼽힌다. 유리와 철골 구조 중심의 박람회장을 설계하면서 기능주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 경험이 이후 작업 방향을 바꿨다. 다만 전환 이후에도 인간적 척도와 재료의 물성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 냉혹한 기능주의와는 구별되는 입장을 끝까지 지켰다.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알바 알토는 어떤 관계인가?
둘 다 같은 시대 북유럽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로, 인간적 척도와 자연 재료를 모더니즘 언어에 통합한 점에서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알토는 핀란드 건축가로 아스플룬드와 개인적으로 교류했다고 전해지며, 1930년대 이후 스칸디나비아 건축의 방향에 함께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구체적인 영향 관계의 방향과 깊이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참고문헌
- Stuart Wrede, The Architecture of Erik Gunnar Asplund, MIT Press, 1980
- Claes Caldenby, Olof Hultin (eds.), Asplund, Arkitektur Förlag, 1985
- Gunnar Asplund et al., acceptera, Tidens Förlag, 1931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Skogskyrkogården, World Heritage List, 1994
- Hakon Ahlberg, Gunnar Asplund, Architect 1885–1940, Stockholm,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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