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건축가?2026. 7. 5.by aclstoryji

건축이 기능 너머에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를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증명한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로버트 벤투리: 모더니즘의 금기를 깬 건축가

「복잡성과 모순」 한 권으로 건축의 문법을 뒤흔든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 그의 도발과 유산을 추적한다.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 1925–2018)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로버트 벤투리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Vanna Venturi HousePhoto by Smallbone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건축 여정 — 고향과 대표작이 자리한 곳
필라델피아 · 미국반나 벤투리 하우스 · 미국내셔널 갤러리 세인즈버리관 · 영국길드 하우스 · 미국프랭클린 코트 · 미국 고향대표작

규칙을 부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1960년대 서구 건축계는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확립한 모더니즘의 언어가 지배하고 있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장식은 범죄다' — 이 두 명제는 건축가들이 지켜야 할 불문율처럼 통용되었다. 바로 그 시점에 로버트 벤투리는 정반대의 신호를 내보냈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벤투리(1925–2018)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로마의 미국 아카데미에서 유학한 뒤, 1950년대 말 독립해 자신의 사무소를 열었다. 그는 역사적 참조, 모순, 장식을 건축 언어로 다시 불러들임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문을 밀어 열었다.

발전소 현장을 다니다 보면 기능이 곧 형태인 구조물을 매일 마주한다. 배관과 케이블이 건물 외피를 가득 채우고, 그 자체가 시각적 질서가 된다. 그러나 벤투리는 이렇게 물었다. '기능만으로 건물이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가?' 그 물음이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한다.

Guild HousePhoto by Elliott Brow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선언문 — 『복잡성과 모순』이 쏘아 올린 공

196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출판한 『복잡성과 모순 — 건축에서의』(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는 건축 이론서로는 드물게 대중 담론에까지 파장을 일으켰다. 벤투리는 이 책에서 모더니즘이 '쉬운 통일성'을 추구한다고 비판하고, 건축은 오히려 역사·맥락·의미의 복잡한 층위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은 미스의 'Less is more'에 대한 응수였다. 'Less is a bore(덜함은 지루하다).' 단 네 단어였지만, 이 선언은 건축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표시한다. 벤투리가 말하는 복잡성은 단순한 시각적 과잉이 아니라, 건물이 도시·문화·시간과 맺는 복합적 관계를 뜻했다.

건축 평론가 빈센트 스컬리는 이 책의 서문에서 '1923년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향하여』 이후 건축 창작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술'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이 책은 찰스 무어를 비롯한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의 이론적 발판이 되었다. 물론 모더니즘 진영에서는 역사적 인용을 절충주의적 후퇴로 읽기도 했다.

Sainsbury Wing, National GalleryPhoto by Richard George / CC BY 2.5 / Wikimedia Commons

어머니를 위한 집, 포스트모더니즘의 출발점

이론을 현실로 옮긴 첫 번째 증거는 1964년 필라델피아 체스트넛 힐에 완공된 반나 벤투리 하우스(Vanna Venturi House)다. 벤투리가 어머니 반나를 위해 설계한 이 소규모 주택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점 건물로 불린다.

외관은 단순한 박공지붕 형태처럼 보이지만, 중심 굴뚝이 박공을 반으로 가르고 그 아래에 좁고 낮은 개구부가 불균형하게 자리한다. 익숙한 '집'의 이미지를 인용하되 그것을 살짝 비틀었다. 모더니즘 건물에서라면 제거되었을 요소들 — 아치, 굴뚝, 박공의 균열 — 이 오히려 강조된다.

이 집은 완공 당시 미국 건축계에서 당혹감을 자아냈다. 너무 익숙하면서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건축 비평가들은 이 집이 지닌 상징적 무게를 인식했고,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핵심 사례로 자리 잡았다.

Franklin CourtPhoto by Beyond My Ke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라스베이거스에서 건축을 읽다

1972년 벤투리는 아내이자 동료 건축가인 데니스 스콧 브라운, 스티븐 이즈노어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서 배우기』(Learning from Las Vegas)를 출간했다. 도박 도시의 간판과 주차장, 통속적 상업 거리를 건축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출간 즉시 도발로 받아들여졌다.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은 건물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하나는 '오리(duck)' — 건물 전체가 하나의 조형적 상징이 되는 것. 다른 하나는 '장식된 창고(decorated shed)' — 평범한 구조물 위에 기호와 장식을 얹는 것. 그들은 라스베이거스의 건물이 후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발전소 구내의 건물들은 본질적으로 장식된 창고에 가깝다. 기능을 수행하는 박스 구조 위에 안전 표지, 설비 식별 색채, 방향 사인이 덧붙여지는 것이 그 구조다. 벤투리의 논리로 보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 오히려 건물이 사용자에게 명확하게 말을 건네는 방식이다. 그의 이론은 건축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건강한 문제 제기였다.

세인즈버리관 — 논란과 완성 사이

벤투리 스콧 브라운 앤드 어소시에이츠(VSBA)의 대표 완성작으로 꼽히는 것은 1991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 인근에 들어선 내셔널 갤러리 세인즈버리관(Sainsbury Wing, National Gallery)이다. 고전적인 건물들이 밀집한 런던 심장부에 새 날개동을 추가하는 프로젝트였다.

입면은 인접한 신고전주의 본관의 기둥, 처마, 비례 체계를 참조하면서도 그것을 정확히 재현하지는 않는다. 요소들이 미묘하게 변형되고 간격이 달라지며, 역사적 맥락과 현대성 사이에서 의식적으로 긴장을 유지하는 설계다. 실내로 들어서면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연속 개구부(enfilade) 구성이 고전 회화 갤러리의 동선을 부드럽게 이끈다.

이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84년 찰스 황태자(현 국왕)가 내셔널 갤러리 신관 초기 경쟁 당선작을 두고 '사랑하는 친구의 얼굴에 생긴 추악한 종기'라고 혹평하면서 해당 안이 폐기되었고, 이후 새로운 공모를 통해 벤투리 팀이 선정되었다. 완공 이후 이 건물은 논란을 뒤집고 포스트모더니즘 공공 건축의 성공 사례로 재평가되었다.

결론 — 로버트 벤투리가 남긴 것

로버트 벤투리는 2018년 9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1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건축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았고, 그의 이론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건축 교육의 기본 텍스트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논쟁적 인물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피상적 역사 인용과 겉치레 장식으로 소비되는 것을 그 자신도 경계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진정한 기여는 건축이 기능 너머에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를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증명한 데 있다. 장식된 창고든 복잡한 기호 체계든, 건물은 결국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한다. 그 말이 명확하고 풍부할수록 건축은 공간을 넘어 문화가 된다.

실내건축을 공부하며 공간의 의미를 탐구했고, 지금은 기능이 절대적 우선순위가 되는 플랜트 현장을 오가며 느끼는 것이 있다. 어떤 공간이든 그 안에서 사람이 무엇을 읽어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로버트 벤투리는 그 사실을 건축의 언어로 가장 용감하게 말한 사람 중 하나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로버트 벤투리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벤투리는 1966년 『복잡성과 모순 — 건축에서의』를 통해 모더니즘의 단순·순수 원칙을 비판하고 역사적 참조와 상징을 건축 언어로 복권시켰다. 그가 설계한 반나 벤투리 하우스(1964)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첫 실물 증거로 꼽힌다.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새로운 건축 사조의 토대를 놓은 점이 인정받았다.

로버트 벤투리의 'Less is a bore'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을 뒤집은 것인가?

그렇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격언 'Less is more(덜함이 더함이다)'에 대한 직접적 응수다. 벤투리는 모더니즘의 절제가 건축을 지루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든다고 보았고, 복잡성과 풍부한 의미가 건축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짧은 문장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슬로건이 되었다.

반나 벤투리 하우스는 어디에 있고 방문할 수 있는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체스트넛 힐 지구에 있다. 1964년 완공된 이 건물은 벤투리가 어머니를 위해 설계한 개인 주택이다. 현재 사유지이므로 내부 방문은 불가하지만 외관은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건축 순례지로 알려져 있다.

로버트 벤투리가 프리츠커상을 받은 연도와 수상 이유는 무엇인가?

벤투리는 1991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 정립과 역사적 상징·대중 문화를 건축 언어로 통합한 공로가 인정되었다. 당시 오랜 파트너이자 공동 저자인 데니스 스콧 브라운이 공동 수상에서 제외된 것은 이후 건축계의 성차별 논쟁으로 이어졌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배우기』의 핵심 주장은 무엇인가?

1972년 벤투리, 데니스 스콧 브라운, 스티븐 이즈노어가 공저한 이 책은 라스베이거스의 상업 거리와 네온사인을 진지한 건축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오리'와 '장식된 창고' 개념을 제시해 기능주의와 상징주의의 관계를 재정의했으며, 통속 문화를 고급 예술과 동등하게 다룬 포스트모던 문화론의 선구로도 평가된다.

참고문헌

  1. Robert Venturi,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Museum of Modern Art, 1966
  2. Robert Venturi, Denise Scott Brown, Steven Izenour, Learning from Las Vegas, MIT Press, 1972
  3. Vincent Scully, Introduction, in Robert Venturi,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Museum of Modern Art, 1966
  4.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Jury Citation for Robert Venturi, The Hyatt Foundation, 1991
  5. Paul Goldberger, Robert Venturi, Who Challenged Modernism's Tenets, Dies at 93, The New York Times,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