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건축가?2026. 7. 11.by aclstoryji

건축은 결국 도면 위의 이상과 현장의 재료 사이에 놓인 긴장의 기록을 논한 건축가 "에리히 멘델존"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에리히 멘델존, 아인슈타인 타워에서 시작된 표현주의 건축의 곡선

직선의 시대에 속도와 곡선으로 건축을 그린 독일 건축가, 그의 도면과 콘크리트 사이의 거리를 실무의 눈으로 읽다.

에리히 멘델존(Erich Mendelsohn, 1887–1953)는 독일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에리히 멘델존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Einstein TowerPhoto by Ideophagou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건축 여정 — 고향과 대표작이 자리한 곳
올슈틴(구 알렌슈타인) · 폴란드아인슈타인 타워 · 독일데 라 바 파빌리온 · 영국쇼켄 백화점(켐니츠) · 독일바이츠만 하우스 · 이스라엘 고향대표작

곡선으로 건축을 그린 사람

에리히 멘델존(Erich Mendelsohn, 1887–1953)은 20세기 초 독일 건축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그는 직선과 격자가 이성의 언어로 통하던 시대에, 손목의 힘으로 단숨에 그은 듯한 곡선을 건축의 언어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우리가 유선형 건물, 흐르는 듯한 파사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의 초기 실험이 놓은 발판이 적지 않다.

그는 동프로이센의 알렌슈타인, 지금의 폴란드 올슈틴에서 태어났다. 뮌헨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도 작은 스케치를 멈추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에서 문을 연 그의 사무소는 곧 유럽에서 가장 바쁜 건축 사무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이룬 성취였고, 그만큼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은 결과이기도 했다.

멘델존의 건축을 처음 마주하면 도면보다 스케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 두어 마디 길이의 종이에 그려진 선 몇 개가 이미 완성된 건물의 기세를 담고 있다. 나는 도면과 실제 설비 사이의 간극을 매일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작은 그림 하나가 거대한 구조로 번역되는 과정 자체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De La Warr PavilionPhoto by Marta Gutowska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아인슈타인 타워, 표현주의의 절정과 재료의 진실

멘델존의 대표작은 단연 포츠담의 아인슈타인 타워(Einsteinturm, 1921년 완공)다. 상대성 이론을 관측으로 검증하기 위한 천체물리 관측소로 지어진 이 건물은, 마치 액체가 굳어 솟아오른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새로운 물리학을 담는 그릇은 새로운 형태여야 한다는 시대의 열망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흐르는 이 실루엣에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 건물에는 널리 알려진 재료의 진실이 숨어 있다. 멘델존은 애초에 전체를 하나의 철근콘크리트 덩어리로 부어 만들 생각이었지만, 당시 시공 기술로는 그 복잡한 곡면을 콘크리트로 온전히 타설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상당 부분이 벽돌로 쌓인 뒤 미장으로 마감되어 콘크리트처럼 보이도록 처리되었다. 설계 의도와 실제 시공 사이의 이 거리는, 플랜트 현장에서 도면 위 이상과 현장 조건이 부딪히는 순간을 매일 겪는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그래서 아인슈타인 타워는 표현주의의 정점인 동시에 그 한계를 정직하게 드러낸 건물이기도 하다. 형태가 재료를 앞서갔고,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재료를 위장해야 했다. 이 지점을 두고 어떤 이는 순수성의 결핍이라 비판하고, 어떤 이는 오히려 이상을 향한 인간적인 분투라 평한다. 어느 쪽이든, 완공 후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탑이 여전히 관측소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답이다.

Schocken Department Store ChemnitzPhoto by Altsachse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속도의 미학과 백화점 건축

에리히 멘델존은 1920년대 독일이 겪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건축가였다. 그의 유선형 파사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동차와 전차가 지나가는 거리에서 속도를 시각화한 언어였다. 특히 쇼켄 백화점 연작에서 그는 밤이면 빛으로 채워지는 긴 유리 띠를 수평으로 감아, 건물 자체가 도시의 리듬을 흡수하도록 만들었다.

그중 켐니츠의 쇼켄 백화점(1930년 완공)은 오늘날까지 남아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곡선으로 휘어지는 모서리, 층마다 이어지는 창의 수평선은 정지한 건물에 운동감을 부여한다. 나는 발전 설비의 배관과 케이블이 기능을 따라 흐르며 만들어내는 선들을 자주 들여다보는데, 멘델존의 수평 띠 역시 장식이기 이전에 사람과 시선의 동선을 따라간 기능의 결과처럼 읽혔다.

그는 미국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담은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뉴욕과 시카고의 마천루, 공장, 곡물 저장고를 담은 이 기록은 유럽 건축가들에게 신대륙의 산업 풍경을 전한 창이 되었다. 여행이 곧 자산이 되는 건축가의 삶은, 경비 때문에 답사를 늘 미루게 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조금 부럽기도 한 대목이다.

Weizmann HousePhoto by אילנה שקולניק ilana shkolnik / CC BY 2.5 / Wikimedia Commons

망명하는 건축가, 세 대륙에 남긴 흔적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으면서 유대인이었던 멘델존의 독일 생활은 끝났다. 그는 영국으로,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마지막에는 미국으로 옮겨 다니며 건축을 이어갔다. 한 나라에서 정점에 오른 건축가가 모든 기반을 잃고 낯선 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삶은, 그의 도면 못지않게 극적인 궤적을 그렸다.

영국 시절의 대표작이 바로 잉글랜드 남부 해안의 데 라 바 파빌리온(De La Warr Pavilion, 1935년 완공)이다. 세르게이 셰르마예프와 함께 설계한 이 건물은 영국 최초의 대규모 용접 강구조 공공건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리벳이 아닌 용접으로 짜인 프레임이 넓은 유리면과 나선 계단을 가볍게 지탱하는 구조를, 강구조 접합을 늘 신경 쓰는 실무자의 시선으로 보면 그 선택의 과감함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레호보트의 바이츠만 하우스와 예루살렘 스코푸스 산의 하다사 의료원 같은 작업을 남겼다. 뜨겁고 건조한 기후에 맞춰 그늘과 통풍을 다시 계산한 이 건물들에서, 표현주의의 곡선은 한결 절제되고 기후에 응답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장소가 바뀌면 건축의 언어도 바뀐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이동으로 직접 증명했다.

비판과 재평가 사이에서

에리히 멘델존을 향한 평가는 오래 엇갈렸다.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엄격한 기능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곡선은 종종 감정에 치우친 형태주의로 비판받았다. 형태가 구조와 기능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기보다, 인상과 표정을 앞세운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그의 초기 스케치는 구조 계산보다 감각의 순간을 먼저 붙잡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이 이분법을 다시 묻는다. 멘델존은 결코 구조를 무시한 건축가가 아니었고, 오히려 강구조와 콘크리트가 열어준 새로운 가능성을 표현으로 번역하려 했다. 그의 곡선은 기술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낸 시대의 속도감을 형태로 붙잡으려는 시도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는 표현주의와 기능주의를 대립이 아니라 연속으로 이으려 한 드문 인물이었다.

물론 모든 실험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앞서 본 재료의 위장처럼, 그의 이상은 때때로 당대 기술의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실무의 눈으로 보자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감추지 않고 건물로 남겼다는 점이야말로 오늘날 그를 다시 읽게 만드는 힘이다.

결론, 도면과 재료 사이에 선 건축가

에리히 멘델존의 건축은 결국 도면 위의 이상과 현장의 재료 사이에 놓인 긴장의 기록이다. 아인슈타인 타워의 위장된 콘크리트, 쇼켄 백화점의 흐르는 수평선, 데 라 바 파빌리온의 용접 강구조는 모두 그가 새로운 형태를 향해 당대의 기술을 밀어붙인 흔적이다. 그 과정에서 생긴 틈까지 포함해, 그의 건축은 하나의 정직한 실험으로 남았다.

찬양과 비판이 오래 교차했지만, 그를 관통하는 진실은 비교적 분명하다. 멘델존은 건축이 시대의 속도와 감정을 담을 수 있다고 믿었고, 세 대륙을 옮겨 다니면서도 그 믿음을 놓지 않았다. 그의 곡선은 장식이 아니라, 격변하는 세계를 붙잡으려는 손의 궤적이었다.

발전 설비의 도면과 실제 배관 사이에서 매일 균형을 맞추는 사람으로서, 나는 에리히 멘델존에게서 이상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재료와 정직하게 대면하는 태도를 배운다. 그것이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건물이 여전히 서 있고, 여전히 논의되는 이유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에리히 멘델존의 대표작은 무엇인가?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은 독일 포츠담의 아인슈타인 타워다. 1921년 완공된 천체물리 관측소로, 흐르는 듯한 유선형 형태 때문에 표현주의 건축의 상징으로 꼽힌다. 이 밖에 켐니츠의 쇼켄 백화점, 영국의 데 라 바 파빌리온도 자주 언급된다.

아인슈타인 타워는 정말 콘크리트로 지어졌나?

겉보기에는 하나의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복잡한 곡면을 당시 기술로 콘크리트 타설하기 어려워, 상당 부분을 벽돌로 쌓은 뒤 미장으로 콘크리트처럼 보이게 마감했다. 설계 의도와 시공 현실이 어긋난 대표적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에리히 멘델존은 왜 독일을 떠났나?

유대인이었던 그는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으면서 독일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영국, 팔레스타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 건축 작업을 계속했다. 정점에 오른 건축가가 기반을 모두 잃고 여러 나라에서 새로 시작한 극적인 사례다.

멘델존의 표현주의 건축은 바우하우스와 무엇이 다른가?

바우하우스가 직선과 격자, 기능주의를 앞세웠다면 멘델존은 곡선과 속도감, 감각적 인상을 강조했다. 다만 그가 구조를 무시한 것은 아니며, 강구조와 콘크리트 같은 신기술을 표현의 언어로 번역하려 했다. 이 때문에 표현주의와 기능주의를 잇는 인물로 재평가된다.

지금도 방문할 수 있는 멘델존 건축물은 어디인가?

포츠담의 아인슈타인 타워는 지금도 관측소로 쓰이며 외관을 볼 수 있다. 켐니츠의 쇼켄 백화점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내부 관람이 가능하고, 영국 벡스힐온시의 데 라 바 파빌리온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운영된다. 이스라엘 레호보트의 바이츠만 하우스도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Kathleen James-Chakraborty, Erich Mendelsohn and the Architecture of German Modern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2. Regina Stephan (ed.), Erich Mendelsohn: Architect 1887–1953, Monacelli Press, 1999
  3. Bruno Zevi, Erich Mendelsohn, Gustavo Gili / Rizzoli, 1985
  4. Erich Mendelsohn, Amerika: Bilderbuch eines Architekten, Rudolf Mosse, 1926
  5. Wolf Von Eckardt, Eric Mendelsohn (Masters of World Architecture), George Braziller, 1960

#에리히멘델존 #ErichMendelsohn #독일 #표현주의 #아인슈타인타워 #데라바파빌리온 #쇼켄백화점켐니츠 #건축 #건축가 #건축에세이 #건축이야기 #건축여행 #건축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