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6. 7. 29.by aclstoryji

건축을 건설된 물체의 목록에서 꺼내 도면과 책, 목소리와 기억이 있는 장소로 넓혔던 건축가 "존 헤이덕"

찬양 · 비판 · 의견 · 진실의 네 시선으로 다시 읽는 건축가 에세이

존 헤이덕, 지어지지 않은 방에도 사람이 살 수 있는가

건물보다 많은 도면과 인물을 남긴 건축가를 따라, 건축이 현실이 되기 전부터 우리를 움직일 수 있는지 묻는다.

존 헤이덕(John Hejduk, 1929–2000)는 미국을(를) 대표하는 개념 건축 건축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존 헤이덕의 생애와 대표작, 건축 철학을 찬양·비판·의견·진실의 네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3초 요약
  • 존 헤이덕은 건물을 많이 짓기보다 도면과 책, 교육을 통해 건축이 품을 수 있는 기억과 서사를 확장했다.
  • 월 하우스 2와 크로이츠베르크 타워는 그의 개념이 실제 동선과 재료, 거주의 조건을 만난 드문 사례이다.
  • 그가 남긴 질문은 완공되지 않은 건축도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장소가 될 수 있는가이다.
Wall House 2Photo by Wenkbrauwalbatros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건축 여정_건툭가와 함께한 곳

존 헤이덕(John Hejduk, 1929–2000)는 미국의 개념 건축 건축가입니다. 건물보다 많은 도면과 인물을 남긴 건축가를 따라, 건축이 현실이 되기 전부터 우리를 움직일 수 있는지 묻는다. 실내건축과 과제에서 문 하나를 그려 놓고 손잡이를 빠뜨린 적이 있다.…
여행 계획 — 지도 번호와 같은 순서다

도면 속 문을 열었는데 방이 나오지 않았다

실내건축과 과제에서 문 하나를 그려 놓고 손잡이를 빠뜨린 적이 있다. 지도교수는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면도에서는 벽과 문짝이 정확히 만났지만, 사람이 손을 뻗을 자리가 없었다. 그날 나는 도면의 선에도 몸이 산다는 것을 배웠다.

존 헤이덕의 도면을 처음 오래 들여다봤을 때도 비슷한 당혹감이 왔다. 문은 있는데 일상적인 방으로 이어지지 않고, 계단은 오르지만 생활의 편리함보다 어떤 의식에 가까워 보였다. 가면 같은 입면에는 눈이 달렸고, 바퀴를 단 집과 이름을 가진 구조물들이 도시를 떠돌았다. 건물이 되지 않은 도면에도 문손잡이의 차가움이 있다.

존 헤이덕은 1929년 뉴욕에서 태어나 브롱크스에서 자랐고, 쿠퍼 유니언과 신시내티대학교를 거쳐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64년 쿠퍼 유니언으로 돌아가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75년부터 2000년까지 건축대학 학장을 맡았다. 그는 건물을 많이 남긴 설계자라기보다 도면, 모형, 시, 책과 교육을 한 덩어리의 건축 작업으로 밀어붙인 사람이었다.

Kreuzberg Tower and WingsPhoto by Jonathan Platteau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정사각형을 마흔다섯 도 돌리자 무엇이 흔들렸나

헤이덕의 초기 작업은 감정적인 형상보다 엄격한 기하학에서 출발했다. 그는 정사각형 격자를 마흔다섯 도 돌린 다이아몬드 구성과 축측도법을 탐구했고, 벽과 기둥, 면과 공간의 관계를 반복해서 시험했다. 종이 위에서는 작은 회전이지만, 그 안에 방을 넣으려 하면 시선과 동선, 모서리의 성격이 한꺼번에 달라진다.

사각 타일을 대각선으로 재단해 본 사람은 안다. 도면에서 간단한 사선 하나가 현장에서는 자투리, 줄눈, 기준점의 연쇄가 된다. 기준선이 몇 밀리미터만 어긋나도 방 끝에서 삼각형 조각이 어색하게 남는다. 헤이덕은 그 불편을 제거하기보다, 익숙한 공간 감각이 흔들리는 순간 자체를 오래 바라본 듯하다.

그의 형식 연구는 대략 다음과 같이 이동했다. - 아홉 칸 격자에서는 기둥과 벽이 공간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시험했다. - 다이아몬드 프로젝트에서는 직교 체계를 회전시켜 지각의 안정성을 흔들었다. - 텍사스 하우스와 월 하우스에서는 평면의 규칙을 실제 거주의 순서와 충돌시켰다. - 후기의 마스크 연작에서는 건축 요소에 이름과 역할, 기억을 부여했다.

종이는 콘크리트보다 약하지만, 때로는 더 오래 하중을 견딘다.

존 헤이덕은 왜 거실 앞에 벽부터 세웠을까

월 하우스 2는 1973년 조경가 아서 에드워드 바이를 위해 구상되었고, 헤이덕이 세상을 떠난 뒤인 2001년 네덜란드 흐로닝언에 완공되었다. 높고 납작한 벽을 중심으로 침실, 식당, 거실 같은 공간이 서로 다른 색과 형태의 덩어리로 매달린다. 집은 한 몸처럼 이어지기보다 벽 양쪽에 흩어진 기관처럼 보인다.

사진으로 보면 생활 공간에 닿기까지 계단과 좁은 연결부를 지나야 하고, 방들은 하나의 효율적인 상자 안에 정리되지 않는다. 거실과 침실의 관계를 최단 동선으로 묶는 대신, 벽을 통과하는 행위에 시간을 부여한다. 벽은 방을 나누는 부재가 아니라, 삶의 전과 후를 가르는 칼날이 된다.

나는 이 집이 편안할지 쉽게 판단하지 못한다. 곡면 외벽을 따라 가구를 놓는 일, 독립된 매스 사이를 오가는 일, 넓은 유리면의 일사와 열손실을 다루는 일은 실생활에서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만으로 집을 재단하면 현관에서 방까지의 망설임, 창가로 몸을 돌리는 순간, 문턱을 넘으며 마음이 바뀌는 시간도 함께 잘려 나간다.

얼굴을 단 집에서 매일 잠들 수 있을까

1980년대의 헤이덕은 건물에 사람과 직업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음악가의 집, 화가의 집, 자살자의 집, 자살자의 어머니의 집 같은 존재들이 도시를 채웠다. 이들은 일반적인 건축 프로그램이라기보다 기억과 직업, 상실을 맡은 등장인물에 가까웠다. 그는 도시계획을 한 편의 배치도보다 배역표처럼 다루었다.

이 태도는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 타워와 날개동에서 부분적으로 현실이 되었다. 사진 속 회색 하늘 아래 타워는 가늘고 높게 서 있고, 낮은 주거동의 남측 입면은 눈과 입을 단 얼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얼굴 뒤에는 계단과 욕실, 부엌과 침실이 들어가야 했다. 상징도 배수관을 피할 수는 없다.

여기서 개념 건축의 긴장이 생긴다. 도면 속 인물은 늙지 않지만 실제 외벽 도장은 자외선과 빗물에 바래고, 철제 난간의 접합부에는 수분이 머물며, 창호 주변 실란트는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한다. 헤이덕의 형상이 약해지는 순간은 시공되는 때가 아니라, 의미를 지키면서도 사람이 안전하게 살도록 세부를 조정해야 하는 때였을 것이다. 추측이지만, 바로 그 번역의 어려움이 그의 실현작을 더 귀하게 만든다.

건축학교가 한 사람의 가장 큰 건물이 될 수 있는가

헤이덕을 지어진 면적만으로 평가하면 이야기가 지나치게 작아진다. 그는 쿠퍼 유니언에서 학생들에게 정답에 가까운 평면보다, 건축이 무엇을 기억하고 누구에게 말하는지를 묻게 했다. 회화와 문학, 영화와 시가 설계실 안으로 들어왔고, 학생의 작업은 전시와 출판을 통해 다시 하나의 공적 담론이 되었다.

그의 교육은 자유롭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유에는 정밀함이 필요했다. 인물에게 이름을 붙였다면 그 인물이 어느 방향을 보고, 어떤 재료의 옷을 입으며, 도시에서 얼마만큼 떨어져 서는지 끝까지 그려야 했다. 상상은 구조 계산을 면제받는 구역이 아니라, 책임질 항목이 더 늘어나는 구역이었다.

다만 이런 교육이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니다. 은유가 강해질수록 건축의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반복 가능한 시공 해법이 뒤로 밀릴 수 있고, 시적인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은 형식의 문턱 앞에서 오래 서성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헤이덕은 교육이 취업용 도면을 빨리 만드는 훈련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켰다. 건축학교를 떠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질문을 심는 일. 그것이 그가 가장 오래 사용한 공법이었다.

결론: 존 헤이덕이 종이 위에 남겨 둔 거주자

존 헤이덕은 건축을 건설된 물체의 목록에서 꺼내 도면과 책, 목소리와 기억이 있는 장소로 넓혔다. 초기의 아홉 칸 격자와 다이아몬드 연구는 엄격했고, 월 하우스는 거주의 순서를 벽 앞에 멈춰 세웠으며, 마스크 연작은 건물에 이름과 얼굴을 주었다. 그 성취는 분명하지만, 상징이 강한 공간의 실제 거주성과 시공 이후의 유지관리까지 자동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미실현작을 실패라고 부르기 어렵다. 어떤 도면은 건설보다 읽히는 일을 먼저 택했고,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다른 건축을 낳았다. 완공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같지 않다. 종이는 콘크리트보다 약하지만, 때로는 더 오래 하중을 견딘다.

여행 경비를 계산한 종이 한쪽에 흐로닝언과 베를린 사이의 이동 시간을 적었다가 지운 적이 있다. 대신 월 하우스의 벽을 확대해 보고, 그 벽을 통과하는 데 몇 걸음이 필요할지 가늠했다. 존 헤이덕이 내게 남긴 것은 가 보아야만 알 수 있다는 조급함과, 가기 전에도 정직하게 상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 사이의 좁은 틈이다. 나는 아직 그 틈의 치수를 재는 중이다.

쉬어가는 퀴즈

존 헤이덕이 1975년부터 2000년까지 학장을 맡은 학교는 어디인가

  • 가. 쿠퍼 유니언
  • 나. 바우하우스
  • 다. 예일대학교
정답 확인

정답: 가. 존 헤이덕은 쿠퍼 유니언 건축대학에서 25년 동안 학장을 맡아 독특한 건축 교육을 이끌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존 헤이덕은 왜 개념 건축가로 불리는가?

존 헤이덕은 완공 건물보다 도면, 모형, 시와 책을 통해 건축의 의미를 탐구한 작업을 많이 남겼다. 그의 계획은 기능을 해결하는 설계안에 머물지 않고 기억, 죽음, 직업과 도시의 관계를 서사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개념 건축의 대표 사례로 읽힌다.

존 헤이덕의 월 하우스 2는 언제 어디에 지어졌는가?

월 하우스 2는 1973년 미국 코네티컷의 부지를 전제로 설계되었지만 당시에는 건설되지 않았다. 헤이덕 사후인 2001년 네덜란드 흐로닝언에 실현되었으며, 거대한 벽과 분리된 생활 공간이 특징이다.

존 헤이덕과 뉴욕 파이브는 어떤 관계인가?

존 헤이덕은 피터 아이젠만, 마이클 그레이브스, 찰스 과스메이, 리처드 마이어와 함께 1972년 출간된 책 『Five Architects』를 통해 뉴욕 파이브로 알려졌다. 다섯 사람은 하나의 사무소나 통일된 운동을 만든 집단이 아니라, 당시 형식적 모더니즘을 새롭게 탐구한 건축가들이었다.

크로이츠베르크 타워는 존 헤이덕의 실제 건축물인가?

크로이츠베르크 타워와 날개동은 베를린 국제건축전시회와 관련해 계획되어 1980년대 후반 완성된 실제 주거단지이다. 헤이덕의 상징적이고 의인화된 형태가 주택의 계단, 설비와 생활 공간으로 번역된 드문 생전 실현작이다.

존 헤이덕의 건축 교육은 무엇이 달랐는가?

헤이덕은 쿠퍼 유니언에서 건축을 공학적 문제 해결에만 한정하지 않고 미술, 문학, 영화와 시를 함께 다루도록 했다. 동시에 도면과 모형의 형식적 정밀성을 중시해, 상상한 개념을 구체적인 공간 언어로 끝까지 발전시키게 했다.

참고문헌

  1. John Hejduk, Three Projects, The Cooper Union, 1969
  2. John Hejduk, Mask of Medusa: Works 1947–1983, Rizzoli, 1985
  3. John Hejduk, Victims, Architectural Association, 1986
  4. John Hejduk, Such Places as Memory: Poems 1953–1996, MIT Press, 1998
  5. The Cooper Union, John Hejduk Works, 공식 아카이브
  6. Canadian Centre for Architecture, John Hejduk fonds, 1947–2000
  7. K. Michael Hays, Sanctuaries: The Last Works of John Hejduk,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2002

#존헤이덕 #JohnHejduk #미국 #개념건축 #월하우스2 #크로이츠베르크타워와날개동 #아트리스카사회문화센터 #건축 #건축가 #건축에세이 #건축이야기 #건축여행 #건축디자인